욕망노트 02
작은 마당이 있었으면 좋겠다.
적당한 크기의 전원주택은 층고가 높고, 다락방이 있었으면 좋겠고,
거실과 부엌은 모두 통유리로 되어 있어서, 햇볕이 잘 드는 집이어야 해.
거실에서 보이는 풍경은 하루종일 멍 때리고 싶은 마당뷰이고,
부엌은 뒷마당이 연결되어 있는데, 날씨가 좋을 때는 바깥에서 식사가 가능하지.
옆마당에는 목욕탕이 있고, 연결된 화장실에는 핀란드식 건식 사우나가 있어,
차량이 두 대가 주차가능한 차고 옆에는 남편의 운동방이 있어.
가족이 다 같이 영화를 감상할 수 있는 작은 영화 감상실에는 개인별 리클라이너 소파가 있고,
침실은 집의 제일 안쪽인데 누워서 하늘을 볼 수 있게 일부분이 통유리로 되어있어.
2층 서재에서는 저 멀리 있는 호수가 눈에 들어오고....
비전보드 속 내 집 이미지를 찾기 위해, 핀터레스트를 한참을 뒤졌던 적이 있다. 그렇게 며칠을 뒤졌지만 수 없이 많은 집들 중에 딱 내 집이다!라는 느낌이 드는 곳을 발견하지는 못했고, 그냥 그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몇 장을 골라 비전보드에 붙여 두었다. 이번에 다시 핀터레스트에 들어가서 내가 원하는 그 집을 찾고 있는데, 이번에는 집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점점 더 눈에 들어온다. 설거지를 하다 말고 눈 맞춤을 하고 있는 신혼부부, 마당에서 뛰어놀고 있는 아이들, 소파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부인을 바라보는 남편, 욕실 셀카를 찍는 할머니와 그 할머니의 머리를 자르고 있는 할아버지의 모습...
서울의 끝자락에 살다가, 올해 2월에 경기도로 이사를 왔다. 집주인이 전셋값을 올리기도 했지만, 점점 늘어나는 아이의 장난감이 거실을 다 점령하기 전에 조금 더 큰 집으로 이사를 가야 했다. (아이가 걷는 것도 시끄럽다면서 올라오시던 아랫층 아저씨도 더이상 뵙고 싶지 않았고) 서울은 아니었지만, 회사와의 거리도 더 가까워졌고, 무엇보다 20평대에서 30평대로의 변화는 끝내줬다. 처음 15평 빌라에서 시작했던 신혼집에서 20평대 아파트로 넘어갔을 때 궁전 같던 그 느낌이었다. 쌓여가던 육아용품을 모두 정리하고 아이방을 만들어주고, 거실에는 오랫동안 갖고 싶었던 화이트 패브릭 소파를 배치하고, 북카페 같은 공간을 만들었다. 필로티 1층 거실의 두면이 창이라, 아침에는 햇볕이 잘 들고, 거실창에는 소나무가 액자같이 걸려있다. 꽤 오랫동안 집을 못 정하고 있다가, 이 뷰를 보고 바로 계약했으니까. 첫눈에 반한 집이랄까.
그렇게 벌써 이 집에 들어와 산지 9개월이 지나고 있는데, 벌써 이 집에 대한 애정이 사라졌음이 곳곳에 보이기 시작한다. 입주청소를 해서 반짝반짝 빛나던 창틀은 벌써 먼지가 잔뜩 앉았고, 바닥은 물티슈로만 살짝 닦아도 시커먼 지경이고, 소파에 얼룩덜룩한 자국은 앉을 때마다 신경 쓰이고, 다시 스멀스멀 거실로 자리 잡는 아이의 장난감이 보인다. 육아휴직 복직 후에 점점 더 시간은 부족해지고, 아이는 커가면서 갖고 싶은 것이 많아졌다. (물론,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이 더 길어지면서, 내 외부의 공간에 대한 관심도가 상대적으로 줄어드는 것 같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간이 나에게 주는 만족감의 유효기간이 점점 더 짧아지는 것 같다. 한계효용체감의 법칙까지 설명하지 않아도, 점점 더 물질적인 것들이 나에게 주는 만족감의 유통기한이 짧아지는 것 같다. (특히 저 소파는, 정말 오랫동안 고민해서 샀는데 사고 나서 일주일도 안되어 후회했다)
다시 한번 집에 대한 내 욕망에 대해 질문을 던져본다. 내가 원하는 집을 구체적으로 꿈꾸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집보다는 내가 함께 살고 있는 가족들과의 관계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적었던 (이 글과 똑같은 제목의) 과거 브런치 글에서도 같은 내용을 말하고 있었다, 곧 태어날 아이에게 집이 주는 안정감보다, 가족이라는 관계망이 주는 안정감이 더 중요하다고.
https://brunch.co.kr/@dailytraveller/14
집을 투자의 대상으로 대하는 사람과
집을 휴식의 공간으로 대하는 사람과
집을 가족의 공간으로 대하는 사람과
집을 성장의 공간으로 대하는 사람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나에게 집은 어떤 공간일까??
나에게 집은 위에서 말한 모든 것이 다 포함되어야 한다,
투자의 대상으로의 집은 명확하게 구분이 필요하고,
휴식의 공간과 성장의 공간과 가족의 공간 역시 집 안에서도 철저하게 구분해야 한다.
내가 지금까지 집을 정한 기준은, 내가 처음에 나열한 나의 이상적인 집과는 한참 거리가 멀다.
1. 서울시 전세대출(기본 금리보다 아주 조금 저렴하다) 이상의 무리한 대출을 받지 않는다.
2. 직장과의 출퇴근 시간이 30분을 넘지 않는다.
3. 대중교통이 잘 되어 있고, 주차가 편해야 한다.
책을 읽고 공부하기 전의 나는 집을 살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다. 청약을 하면서도 내가 들어가 살 집만을 생각했었다. 집을 투자의 대상으로 생각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위의 브런치글에서도 드러난다) 그러다가 로버트기요사키부터 하브애커, 라미세티와 같은 책들을 읽으면서 투자를 위한 집과 살기 위한 집을 구분하기 시작했다. 그런 구분이 되니, 서울에 있는 1~2인 가구를 위한 아파트 청약도 하게 되었고, 올해는 임대인 자격으로 계약을 하기도 했다.
직장과의 출퇴근 시간은 너무나 당연한 조건이었다. (차가 없을 때는) 출퇴근을 위한 대중교통 역시 중요했고. 그런데 만약 내가 더 이상 직장인이 아니라면, 일터가 곧 집이 될 수 있다면, 이 조건은 더 이상 필요 없어질 수도 있다. 책을 읽고, 코칭을 배우고, 새로운 제2의 인생을 꿈꾸게 되면서, 나에게는 이 두 번째, 세 번째 기준도 점점 사라지고 있다. 고정관념들로부터 하나씩 벗어나야 진짜 내가 원하는 욕망이 드러난다.
나에게 집은 살(buy) 집과 살(live) 집으로 명확하게 구분되고,
나에게 집은 휴식의 공간이고,
나에게 집은 성장의 공간이고,
무엇보다 그 안에 함께 살고 있는 가족의 공간이다.
결국, 어디에 살고 있든지 집에 대한 나의 이 개념만 지켜진다면 나는 나의 드림하우스에 살고 있는 것이다.
나의 두 번째 욕망 노트 : 나는 내가 살고 싶은 집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