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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isy Jan 03. 2021

프리터족 한심 한가요?

30대 아르바이트생, 그게 바로 접니다.

아르바이트로 생계유지하는 '프리터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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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바로 접니다. 



'프리터족'을 들어보셨나요? 

 

Free + Arveiter를 합친 Freeter. 나는  얼마 전 뉴스 기사를 보고 처음 알게 되었다. '프리터족'은 일정한 직업 없이 아르바이트로만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뜻부터 서글퍼져 온다. 심지어 자발적 프리터족보다 비자발적 프리터족이 더 많다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프리터족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그것은 취업난 때문이다. 취업이 어려워 취업 전까지 생계비, 용돈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며 취업을 준비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자발적 프리터족은 스스로 프리터족이 되기로 선택한 사람을 일컫는다. 하지만 선택한 이유 중 가장 많이 차지한 것은 기존 직무, 적성과 현실의 괴리감이었다. 대학생 역시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적성과 맞는지 몰라 취업 전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경험하며 적성을 찾아가기 위해 프러터족을 선택했다고 한다.  


내가 프리터족을 선택한 이유는 조금 다르다. 나는 학창시절부터 카페창업에 대한 막연한 꿈이 있었다. 그렇기에 내가 거쳐온 모든 일이 나중에 카페창업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하며 시작했던 경우가 대다수였다. 그러니까 자발적이기는 하나 또 반자발적인 그런 상황이기도 했다. 창업이 아닌 프리터족이 된 이유가 있다. 물론 이쪽 분야에 경험이 없었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창업비용이 없었다. 내가 프리터족이 되기 전엔 광고대행사 마케팅기획팀에서 3년을 일했다. 적성이 안 맞아서 그만둔 것은 아니었고 회사가 어려워지고 임금이 밀리기 시작했다. 결정적으로 큰 사건은 회사 대표가 직원을 상대로 사기를 친 것이다. 그러니까 나 역시 사기를 당한 직원 중 일원이었다. 처음엔 몇 백에서 몇 천.. 돈은 불어나고 그 돈 때문에 그만두지 못하고 질질 끌려 다니며 밀린 월급 또한 점점 불어났다.  결단이 필요했다. 이미 늦었을지 모르겠지만 당시 난 큰 결심을 했다. 


그냥 내가 빚을 떠안자

그렇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이대로 계속 믿고 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불어나는 빚에 겁이 났기에 차일피 지나온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다. 너무 사람을 믿고 일만 했던 나의 잘못도 있었겠지만 정신을 차릴 땐 눈덩이처럼 불어난 것이다. 그래서 내린 결단이었다. 내가 모든 것을 책임지자. '혹독한 인생수업을 큰돈 내고 배우는구나' 스스로를 마인트 컨트롤했다. 나름 첫 직장에서의 3년의 시간. 나의 노동의 대가. 열정. 믿었던 사람들의 배신. 모든 것들이 한순간 무너져 내렸다. 하지만 나마저 무너질 수는 없었다. 정말 많이 울면서도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 소송도 했고 다시 나의 길도 찾았다. 학창 시절부터 꿈꾸던 디저트 카페 창업. 이 와중에 먹고살 길이 눈앞에 스쳐갔고 나는 더욱 힘을 내야했다. 


제로가 아닌 마이너스부터 

그렇게 회사를 그만두고 케이크 창업반, 제과 수업 듣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커피를 배웠다. 사실 디저트에 더 관심이 많았었는데 커피를 배운 후 커피의 매력에 푹 빠졌었다. 그렇게 20대 마지막을 보내며 30대 본격적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나는 시작부터 마이너스였다. 남들은 몇 천 모을 때 나는 몇 천을 갚았다. 그 5년이란 시간이 참 길기도 짧기도 했지만 가끔씩 떠오르는 생각에 상처가 덧나기도 했다. 그렇게 훌훌 털어버리지 못한 과거의 일로 내가 다치는 것이 참 속상했다. 카페에서, 제과제빵사로 다양한 카페와 빵집, 디저트 카페에서 일하며 사람들은 늦은 나이에 왜 이 일을 하냐고 묻곤 한다. 그리고 일하다 보면 "얼른 본인 카페 해야지, 회사생활도 했으면 돈도 모았을 거 아니야, 얼른 창업, 언제 할 거야"라며 자꾸 찌른다. 하지만 그들이 나의 사정을 알고 말하는 것은 아니니 그냥 혼자 웃어넘긴다. 


'꿈을 이루기 위해' 자발적 프리터족이 되다

그렇게 나는 자발적 프리터족이 되었다. 어쩔 수 없이 된 것 같지만 무슨 일을 하든 카페 창업에 대한 생각을 놓은 적이 없었다. 항상 염두에 두며 일했기에 나에겐 별로 갑작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바리스타&파티시에로 일을 시작하며 직원으로 일하는 경우도 있었고 아르바이트로 일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지금은 완전한 프리터족이 되었다. 적성을 찾기 위해가 아니라 꿈을 이루기 위해 프리터족이 되기로 선택하였다. 나는 또 우리는 꿈을 이루기 위해, 또 다른 이들은 꿈을 찾기 위해 프리터족이 된 것이다. 프리터족 생활에서 금전적인 부분을 빼면 아주 만족하는 편이다. 마케팅기획팀에서는 주 7일, 야근, 회식, 어떻게 3년을 일했는지 내가 생각해도 신기하다. 프리터족의 가장 만족하는 부분은 칼퇴가 보장되니까 퇴근 후 삶이 한결 여유롭다. 


프리터족 한심한가요?

내가 프러터족이 된 이유는 단순하지만 열정까지 단순한 건 아니다. 자발적 프러터족이 되기까지 쉬운 결정만은 아니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쫓아오다 보니까 프러터족이 된 것뿐이다. 지금은 제과 중에서도 마카롱을 좀 더 깊게 배우고 싶어 마카롱 매장에서 일하게 된 것이다. 직원을 구하는 곳이 없어 아르바이트생이 된 것이고 나는 만족하며 다니고 있다. 누구는 이 나이에 아르바이트로 생계유지를 한다고 한심하게 보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나름의 이유를 가지고 열심히 일하고 있다. 모든 프리터족이 꿈을 가지고 있다면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 아무도 흉볼 수 없다. 사회가 어려워지고 취업난이 심각해질 때 일 수록 지금 당장 하고자 하는 일을 하고 있지 못하더라고 하고자하는 일을 쫓아 계속 해내가는 것이 우리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자 하는 의지만은 잃지 않길 바란다. 그 꿈을 계속 놓지 않고 있다면 분명 내가 꿈꾸는 곳에 서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OO을 하기 위'해 'OO을 꿈꾸고 있기에' 프리터족이 된 모든 이들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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