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우리 아빠

평범한 나의 평범한 아버지

by 벗곰

-느그 아부지 뭐 하시노?

-아파트 경비하시는데예.


아버지는 꽤 자주 이렇게 말한다.


나는 너희들이 제일 좋다. 세상에서 얼마나 귀한 자식들인지 모른다. 세상을 다 줘도 내 너희들하고 안 바꾼다. 다 필요 없다.’


나는 한숨을 쉬며 대꾸한다. ‘아빠는 세상이 얼마짜리인지 알고 그래? 솔직히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서 당장 죽어도 10원 한 장 안 나와.’


그는 상당히 신실한 기독교인이기도 하다. 이런 말도 가끔 한다. ‘우리 아버지는 전능하신 하나님이다. 내 아버지는 유일하신 하나님이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강하다. 아무것도 두려워할 것이 없다.’


그의 말은 이따금 조금 서글프게 들린다. 역시 할아버지가 너무 일찍 돌아가신 것이 문제일까?라고 나는 생각한다.


내 아버지의 이전 직업은 공무원이었다. 그는 내가 사는 소도시의 말단 공무원으로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한 직장에서 40년을 일했다. 그 결과 내 부모는 퇴직 연금이 있고, 자그마한 재산을 모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계속 일한다. 일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의 자식은 모두 실업자 신세다.

사실상 우리 남매가 경제적으로 독립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언젠가 아버지와 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그는 딱 한 번 정도 그 이야기를 꺼냈다.


‘내가 어렸을 때, 너희 큰아버지가 결혼을 했어. 결혼을 하고 첫 자식을 낳았는데 그게 00이야. 첫딸이라고 얼마나 귀여워했는지 모른다. 그때가 겨울이었는데, 지 자식 추울까 봐 세상에 털목도리, 털장갑, 털모자까지 사서 둘둘 싸매고 이쁘다고 품에 안고 뽀뽀를 쪽쪽 하더라. 그래 놓고 나한테는 그 한겨울에 장갑 한 짝 사준 적 없다.’


‘그래 놓고 나한테는 뭐라고 했는 줄 아냐. ‘니들은 쓰레기다 쓰레기. 니들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 니들은 밥만 축내는 쓰레기다. 당장 내 집에서 나가라.’ 그러면서 나를 두들겨 패드라.’


그 당시 나는 아무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중에 조금 울었다. 내 말을 들은 어머니는 약간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상처를 가족과 타인에게 되풀이하지 않았다. 그 자신에게도.

그는 승리했다. 그는 승자다.


그는 한 가정의 위대한 가장으로 당당히 자리매김했다.


그 결과 나는 자신의 평범한 아버지를 세상에서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세상의 수많은 딸들 중 한 명이 될 수 있었다.


사실 내가 어렸을 때 우리 가족은 형편이 제법 어려웠다. 엄마는 아팠다.

내 아버지는 보리쌀 서 말만 있어도 안 한다는 처가살이를 무려 10년이나 해야 했다.


그러나 시절이 좋았기 때문이었을까. 그럼에도 나와 내 동생은 꽤 많은 장난감을 가질 수 있었다.

내 아버지는, 자신은 뒤축이 다 떨어지도록 낡은 신을 신으면서도 우리 남매가 원하는 것은 대부분 다 들어주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좋은 아버지를 두었음에도 나는 가끔 아버지를 원망하곤 했다.


그의 사랑은 상당히 이상적이지만 그 경계가 명확했다.

내 아버지의 사랑은 자식들을 자신의 울타리 안에 가두는 종류의 사랑이었다.


오직 그 경계선 안에서만 완벽한 자유가 허락되었다.


아버지는 한동안, 아니 꽤 오랫동안 내가 공무원이 되기를 소원했다.

그의 고집은 십여 년 정도 지속되었다. 나는 십여 년 가까이 공무원 시험에 도전하다가, 잠깐 다른 일을 하다가, 다시 공무원 시험에 도전하기를 반복했다. 우리는 갈등했고, 그는 고집을 포기하지 않았고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본래 전문대를 가고 싶었다. 엄마가 말했다. ‘너 작가가 얼마나 가난하게 사는 직업인 줄 아냐. 네가 그런 말을 하니 엄마 다리가 후들거렸다.’라고.


아버지가 말했다. ‘그냥 대학은 국립대 저렴한 곳 들어가면 된다. 대학 다니면서 공무원 시험 준비해라. 그래서 합격하면 졸업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된다. 그까짓 9급 일단 붙기만 붙으면 내가 다 길을 알려 준다. 7급? 그런 거 치지 마라. 9급 달고 들어와 조금만 버티면 바로 8급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것들이 몇 명 뽑지도 않는 7급 시험에 도전했다 다 떨어진다. 나야 워낙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출발해서 이렇게 고생했지만 너는 아버지가 공무원인데 걱정할 것 하나도 없다. 아빠는 친구가 많다. 너 하나 출세시키는 것은 몇 푼 안 든다.


그는 이미 내 동생을 통해 큰 실패를 경험했다. 그래서 두 번의 실수는 결코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나는 그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나는 시험에 합격하지 못했다. 그는 대단히 실망했다. 무슨 고시 공부를 한 것도 아니고, 그까짓 9급 하나를 못하면서 –라고.


그의 자존심은 나를 지지하면서도 결코 내가 그를 능가하는 꿈을 꾸게 허락하지 않았다.


퇴직 후 아버지는 아파트 경비원으로 재취업에 성공했다. 그의 상사는 그보다 나이가 열 살 정도 어린 여성인데, 그녀는 내 아버지를 제법 높게 평가한 것 같다. 그래서 최근 아버지는 승진했다.


그러나 때때로 일이 힘들 때 그는 집에 돌아와 전에 없던 짜증을 내기도 한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내 아버지의 시간 역시 그를 점차 평범하고 초라한 늙은이로 몰아간다.


아버지는 성품이 다정하고 마음씨가 좋았다. 지금도 물론 그렇다. 그는 자주 우리 남매를 안아주었고 내게 악수를 청했다. 내 기억에 그의 손은 항상 나보다 매우 따뜻했다. 그의 손은 여전히 따뜻하지만 가끔 이제 내 손이 더욱 따뜻하다.


아버지는 그의 강한 자존심만큼 순진하고 오만한 사람이었다. 예전 같았으면 자기 앞에서 찍소리 하나 못했을 것들 앞에서 굽신거리며 살아야 한다고 투덜거렸다. 나는 말했다.


‘아빠, 그 웃긴 8급, 9급짜리 이제 아빠 같은 사람들 인간 취급 안 해.’


아버지는 웃었다. 아무런 악의도 없었다. 바보.


아버지는 매사에 긍정적이고 희망으로 가득 차 있었으며, 그에게 어울리는 꽃을 고르라면 나는 별 망설임 없이 해바라기를 골랐을 것이다.


아버지는 사교성이 좋았다. 이 자그마한 아싸들의 공동체에서 유일한 인싸라 할만했다. 그에게는 다양한 친구들이 있었다. 그들 중 상당수는 불륜을 저지르고, 사기를 치고, 공금을 횡령하고, 감옥에 갔다. 엉망진창들.

나는 엄마에게 예전에 이렇게 말했다.


엄마는 성인군자하고 결혼했다.’라고.


나는 한때 그렇게 생각했다. 만약 아버지가 좋은 부모를 만나 대학에 갈 수 있었다면, 서울에서 직장을 얻을 수 있었다면, 권세 있고 부유한 집안의 여성과 결혼할 수 있었다면, 그랬다면 그의 운명도 상당히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고.


그랬다면 우리 남매의 운명 또한 역시 조금 달랐을지도.


아버지는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나를 대학에 보냈다. 그리고 언제나 누누이 강조했다.


‘여자도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어.’라고.


내 아버지는 언제나 은행에서 돈을 찾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일단 여러 장 뽑아보고 그중에서 가장 깨끗한 돈을 골랐다. 그리고 그것을 월급으로 가져와 어머니에게 맡겼다.


그는 내 어머니와 우리 남매에게 항상 떳떳한 돈을 건넸다.

모양도 깨끗했고 출처도 분명했던.


이만하면 충분하지 않은가?


더 이상 그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긴말을 덧붙일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 흔한 듯 평범한, 드문 행운에 나는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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