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소 늦은 시간에 집을 나섰다. 마음은 쉬고 싶었지만 책을 반납하러 가야 했기 때문이다. 목적지는 국채보상운동기념도서관, 예전엔 대구시립중앙도서관으로 불렸던 곳이다. 갈 때는 조용히 대구 중앙 지하상가로 갔다. 며칠 전에 빌렸던 수필집 다섯 권을 자동반납함에 넣고 돌아서는데 해선 안 될 생각이 들었다.
'갈 때는 동성로 한가운데를 관통해 볼까?'
글쎄, 모처럼 만에 그 싱그럽고 활기찬 에너지를 느껴보고 싶었기 때문일까? 어쩌면 간 크게도 그런 결심을 한 건지 모르겠다.
도서관을 빠져나와 신호등 앞에 섰다. 앞뒤 양옆, 눈을 둘 수 있는 곳은 죄다 젊은 연인들뿐이다. 게다가 날씨가 무덥다 보니 옷차림이 얇다. 심지어 지나치게 얇은 사람들도 적지 않아 어떻게든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애를 써야 할 정도이기까지 하다. 만약 동성로라는 공간을 테두리로 두를 수 있다면, 방금 전에 막 건넌 신호등이 서 있는 곳부터 본격적인 동성로라고 할 수 있을 테다. 꽤 큰 직사각형의 세로 변에 해당되는 곳으로, 이제 한두 발만 더 안쪽으로 들여놓으면 나 또한 시내 중심가를 활보하게 되는 상황에 놓인다.
용기를 내어 첫 발을 내딛는다. 요란한 음악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려오고, 길을 가던 사람들의 평균 연령이 갑자기 확 낮아진다. 마치 나이 든 사람들은 여길 드나들면 안 된다는 듯 암묵적인 동의까지 오고 간 것처럼 여겨질 정도이다. 간간이 만나는 나이가 들어 보이는 사람들이 그저 반가울 뿐이다.
발에 힘을 실어 좌우로 도열된 상가 한가운데를 뚫고 지나간다. 남자고 여자고 할 것 없이 저마다 담배를 입에 물고 나와 길 위에 매캐한 연기를 쏟아낸다. 담배를 입에 대지 못하는 사람들은 촌스러운 사람이라는 듯 저마다 기세 좋게 담배를 피우고 있다. 요란한 웃음소리가 귀에 거슬린다. 점점 짧아지고 얇아진 옷차림에 눈을 둘 데가 없다. 그냥 앞만 보고 길을 걷고 있는데도 누군가가 내게 달려와 이렇게 말할 것 같다.
여기에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얼른 여기에서 나가세요.
한때 어느 가수의 노래, '내 나이가 어때서'라는 노래가 크게 히트를 친 적이 있었다. 노랫말 자체에 별 내용은 없다. 누군가가 나이 든 사람에게 뭐라고 한 모양이다. 이런저런 행동을 하는 당신을 보니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제발 나잇값 좀 해라, 따위의 그런 말들이 오고 간 게 아닌가 싶다. 그러다 보니 노래를 부른 이는 상대방에게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고 만다.
야, 내 나이가 어때서 그래?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이 아니야?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 노래에서 꽤 큰 용기를 얻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맞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든, 새로운 인간관계를 시작하든,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든 나이는 정말 숫자에 불과한 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안다. 이건 그저 대외용 멘트일 뿐이라는 걸 말이다. 조금 더 솔직히 말하자면, 나이는 결코 숫자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그 나름의 무게를 가진, 그 연령대가 아니면 공감하기 어려운 그런 성질의 것이 바로 나이이다.
문득 함께 생각해 볼 말이 하나 떠오른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를 때다,라는 표현이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를 때라고 말하는 것은 정말 그때가 가장 빠를 때라는 뜻으로 하는 말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건 단지 늦었다고 생각하며 포기하지 말고, 늦었지만 그때라도 뭔가를 시작하는 것이 늦어버린 시간만 탓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는 의미로 한 얘기일 것이다. 그 말은 곧 늦었다고 생각할 때는 엄연히 늦은 것이라는 뜻이 아닐까?
잔인한 사실인지도 모르나, '내 나이가 어때서'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이미 알고 있다. 지금, 자신의 나이가 아무렇지도 않으니 그렇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뭘 하려는데 나이가 신경 쓰이니 그냥 괜한 오기로 해 보는 말이라는 것을……. 역시 동성로는 나이 든 사람들이 지나갈 만한 곳이 못 된다. 멀더라도 바깥 테두리로 돌아서, 돌아서 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특히 지금처럼 불야성을 이루는 저녁 시간대라면 더더욱 그렇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