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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태용 Oct 12. 2024

#4. 마지막 선택

SF멜로 연재소설 《다시, 만나러 갑니다.》

연구소의 차가운 방 안. 재민은 나무처럼 서 있다. 수십 개의 모니터가 깜빡인다. 그녀의 기억과 데이터가 업로드되고 있었다. 그 순간, 아내와 함께했던 모든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 그녀의 손을 잡고 놀이공원에서 웃던 기억,

- 그녀의 생일에 두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던 순간들... 


우린 다시, 만날 수 있을 거야- 


재민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실험실의 냉기와 차가운 금속 냄새가 재민의 감각을 깨웠다. 눈앞의 모니터에는 아내 수현의 기억 데이터가 촘촘히 나열되어 있었다. 정부 지원을 통해 사망 직전까지 업로딩된 수현의 기억은 이제 재민의 앞에 디지털 코드로 남아 있었다. 그녀의 마지막 순간까지의 모든 기억이 이 작은 기계에 담겨 있는 셈이었다.

< 모든 데이터는 정확하게 복구되었습니다. > 연구원 중 한 명이 차분히 말했다. <우리가 보유한 메모리 업로딩 기술은 98% 정확도에 이르렀습니다. 단, 감정 회로와 세부적인 뉴런 연결은 여전히 불완전합니다.>

재민은 연구원의 말을 조용히 들었다.

「그럼, 수현을 다시 만나려면, 지금 이 상태로도 가능한 건가요?」 그는 이미 너무 오랜 시간을 기다려 왔고, 이제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다.

박사는 화면을 바라보며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 기술적으로는 가능합니다. 그러나 감정 회로가 제대로 연결되지 않는다면, 그녀가 예전의 수현과 완전히 동일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

재민은 심호흡을 하며 물었다.

어느 정도까지 차이가 날 수 있을까요?

박사는 잠시 침묵한 뒤 말했다. < 뉴런의 시냅스 연결이 완벽하지 않으면 감정적 반응이 둔화되거나 왜곡될 수 있습니다. 이론적으로, 그녀는 예전과 같은 인격을 가질 수 없을 수도 있습니다. 감정적 반응, 특히 사랑과 같은 복합적인 감정은 신경망 내의 매우 섬세한 상호작용에 의존합니다. >

재민은 잠시 망설였다. 그가 바라는 것은 그저 수현의 모습만이 아니었다.


- 그가 사랑했던,

- 그녀의 따뜻한 마음과 미소,

- 그 미묘한 말투까지 모든 것이 돌아오길 바랐다.


하지만, 그는 이미 너무나 많은 것을 잃었다. 완전하지 않더라도, 그녀를 다시 만나기만 한다면….

그때, 갑작스러운 전기 신호 오류가 발생했다. 모니터가 깜빡이며 경고음이 울렸다. 재민은 놀라서 모니터를 응시했다.


 무슨 일이죠?

박사는 빠르게 시스템을 점검하며 말했다. < 업로딩 과정에서 메모리 파편화가 발생했습니다. 일정 부분의 기억이 손상되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심리적 안정성을 보장할 수 없습니다. >

재민은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박사는 잠시 고민하더니 < 정부에서 지원하는 업로딩 시스템을 다시 활용할 수 있지만, 회복에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기억의 일부가 완전히 복구되지 않을 위험이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선택해야 할 부분입니다. 완전하지 않은 상태로라도 그녀를 되살릴 것인지, 아니면 더 기다릴 것인지. >

재민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시간과 기억의 덧없음이 그를 짓누르고 있었다.


수현을 다시 만날 수 있다면…. 그게 무엇이든 상관없습니다.

박사는 그의 결정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 그러면, 복구 작업을 진행하겠습니다. >

다시 한번 시스템이 가동되기 시작했다. 아내의 기억이 담긴 디지털 코드들이 하나씩 재조립되고 있었다. 재민은 차가운 실험실 의자에 앉아 그 과정을 지켜보았다. 이제 모든 것은 마지막 선택에 달려 있었다.


- 아내를 쏙빼닮은, 아직은, 텅빈 '껍데기'가 누워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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