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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달 Feb 13. 2024

익숙해지지 않아야 울지 않을 수 있다

「오이지」, 신미나 『싱고,라고 불렀다』 (창비 2014)

헤어진 애인이 꿈에 나왔다

물기 좀 짜줘요
오이지를 베로 싸서 줬더니
꼭 눈덩이를 뭉치듯
고들고들하게 물기를 짜서 돌려주었다

꿈속에서도
그런 게 미안했다


 헤어진 후에 가장 먼저 찾아오는 것은 익숙한 것들이다. 친가 쪽 할머니는 내가 중학교 때 돌아가셨고, 나는 신기하게도 장례식장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염을 할 때도, 눈앞에 있는 할머니가 할머니 같지 않아서 눈물이 나지 않았다. 그러나 양산에 있는 할머니댁으로 들어서자마자 익숙했던 풍경이 사라져 있음을 느꼈다. 할머니가 앉아 있어야 할 자리가 비어있었던 것이다. 빈 공간을 마주한 당혹감에 눈물이 났다. 

 익숙함은 꽤나 묵직한 자리로 내 삶에서 버티고 있다. 익숙함의 무게는 얼마나 진하게 시간을 함께 했는가에 따라 다르게 퇴적된다. 내가 소중하게 여겼던 사람일수록 그와 함께한 기억이 무겁고 시리다. 가족, 연인, 친구들과의 기억은 스쳐가는 뭇사람들과의 시간과는 다르다.

 소중한 사람들과의 익숙함은 치아랑 비슷한 것 같다. 사소했던 기억들이 더욱 시리다. 오이지를 꼭꼭 물기를 짜서 돌려준 애인과의 기억이 시린 이유다. 가끔 아버지가 추어탕을 생각하신다. 할머니께서 끓여주신 추어탕이 생각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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