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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달 Feb 20. 2024

끊기지 않아 다행이야

-「열대어는 차갑다」, 『수학자의 아침』(문학과지성사) 2013) 김소연

마루 아래 요정이 산다고 믿은 적이 있다
잃어버린 세계는 거기서 잘 살고 있다
이 사실만으로 뜨거워질 수 있다


 몸에 깃든 습이 잘 지워지지 않는다. 그래서 한스럽다. 5시에 일어나 시를 읽고, 좋은 문장을 꾸준히 수집하려고 했는데, 게으름이 나를 가만둔다. 가만두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나를 가만둔다. 나는 게으름으로 가만, 가만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끊어지지는 않아 다행이다. 글 쓰는 습관이 하루아침에 싹 모습을 감추지 않는다. 오히려 모으지 못한 문장이 눈치를 준다. 은근하게 바라보는 글들의 시선, 책망 혹은 응원에 일어나서 한 줄이라도 끄적인다.

 삶의 원칙을 몇 가지 세웠다. 아침에 일어나 자기 전까지는 침대에 눕지 않는다는 원칙. 원칙을 지키려고 침대 대신 바닥에 누워 춥다. 그리라도 하려는 내가 갸륵하다.

 늘 작은 한 마디가 나를 움직인다. 이를테면 '잠시만 누울까?', '쇼츠 이거 하나만 보고 일해야지.' 늘 나에게 속는다. 3시간은 3초의 말 한마디로 사라지는 것이다.

 그래도 매일 일기는 쓰고 있다. 그 원칙은 정말 철칙이다. 만약 저녁에 시간이 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면 이른 시간이라도 꼭 쓴다. 게으를수록 나아가려는, 어쩌면 탄성 좋은 고무공 같은 삶을 살고 있다. 어제는 게으름을 덜 부렸다.

 이 시에서 말하는 뜨거움은 내 삶의 탄성과 닮아있는 것 같다. 믿음만으로, 잃어버린 세계에 대한 동경만으로도 나는 온기 가득한 존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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