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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콤한복이 Mar 19. 2023

너는 오늘도 예쁘게 피었네

새로운 계절의 설레임


두 아이를 데리고 아파트 놀이터를 나갔다.

오래간만에 햇살 좋은 일요일 아침이라 모두 야외로 나간 건지 그렇게 붐비던 놀이터가 한산했다.

언니는 자전거를 타고 동생은 킥보드를 타고 나는 벤치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아이들이 놀이터를 몇 바퀴 돌고 왔을 때 그네를 타던 아이가 사과에게 손인사를 했다. 사과도 수줍게 인사에 응답했다.


엄마, 우리 반 친구야
그렇구나 반가워. 옆에 있는 친구도 우리 반이야?
아니요, 저는 8반이에요


친한 친구라던 두 아이는 우리 사과 주변을 맴돌았다.

사과도 동생을 데리고 놀면서도 친구들을 곁눈질했다.

같이 대화하지 않으면서도 다 들리도록 크게 말하고, 같이 노는 것 같으면서도 거리를 두었다.

그렇게 십여분을 일행인 듯 일행 아닌 듯하더니 두 아이가 다른 놀이터를 간다며 돌아섰다.


너도 같이 가지 않을래?


8반 친구가 사과에게 물었다. 

사과는 나를 쳐다보며 웃었다.

보아하니 같이 가고 싶은 눈친데 용기가 없나 보다.


친구들이랑 같이 가서 놀아도 괜찮아
아니, 나 그냥 안 갈래...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를 듣고 친구들이 아쉽게 돌아섰다.

사과도 말은 그렇게 했으면서 미련이 가득 묻은 눈빛으로 친구들 발뒤꿈치를 찐득찐득 무겁게 했다.


힝... 나는 가고 싶은데...


이때 심쿵이의 목소리를 듣고 친구들이 돌아왔다.


같이 가자. 사과도 가자 응? 가자 가자~


성격 좋은 두 친구가 사과의 손을 잡았다.

'아이참~' 어색한 듯 웃더니 자기 동생 손을 꼭 잡고 마지못해 따라나섰다.


엄마는 여기 있을게. 재밌게 놀고 와~


그러거나 말거나 엄마말이 들리지도 않는지 뒤도 한번 돌아보지 않고 넷은 금세 눈앞에서 사라졌다.

나는 일부러 따라가지 않았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멀어지고 다시 의자에 앉아 읽던 책을 펼쳤다. 그러다 문득 아이들이 사라진 저 길 모퉁이를 바라보았다.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잘 아는 친한 친구도 아니고 심지어 한 명은 처음 보는 친구였다. 평소라면 절대 따라가지 않았을 사과였다. 행여 가게 되더라도 '엄마도 같이 가자' 며 기어코 내 손을 끌고 가던가, 그것도 아니면 엄마를 돌아보고 또 돌아보며 '엄마 어디 가지 말고 꼭 여기 있어. 내가 빨리 안 오면 꼭 데리러 와야 해' 했을 것이다.


사과는 겁이 많다. 낯가림도 무척 심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나쁘지는 않다. 덕분에 매사에 신중하고 조심성이 많아 다칠 일이 잘 없다. 사람이 붐비는 곳에서도 절대 엄마눈을 벗어나지 않고 늘 주변을 맴돌고 있기에 내가 정신이 없을 때에도 아이를 놓칠 일이 없다.


다만 두려움 때문에 하고 싶은 것을 그냥 포기하고 마는 일이 종종 있어서 답답한 마음에 안타까울 때가 많다.


반대로 심쿵이는 그런 걱정보다 자신의 욕구가 우선인 아이다. 어려서 그렇다기보다는 타고난 성향인 것 같다. 왜냐하면 사과는 더 어릴 때부터도 지금과 같았기 때문이다.

사과는 그런 동생을 부러워하기도 하고 질투도 한다. 그럼에도 마음처럼 몸이 잘 움직여지지 않아 내 품에서 우는 날도 많았다.


그런 사과를 잘 알아서인지 당연히 가지않을거라고 속단했다. 그런데 엄마 없이 친구를 따라나서다니 놀라웠다. 그게 뭐 그리 대수라고 기특하기까지 했다. 

물론 심쿵이의 힘을 살짝 빌리긴 했지만 어쩌면 오늘은 내심 동생이 고마웠을지도 모른다.

크면서 동생의 덕을 볼 날이 몇 번 더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용기가 없어 나는 하지 못하는 일을 쉽게 해 버리는 동생이 더 이상 얄밉지만은 않겠지, 오히려 그걸 이용할 꾀도 생기겠지.


30여분이 지나고 점심 먹으러 들어오라는 남편의 전화에 아이들을 데리러 갔다.

모퉁이를 돌자 멀리서 심쿵이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렸다. 아이들을 부르려다가 엄마 없을 때 노는 모습이 궁금해서 소리 없이 다가갔다.

그새 친구들과 친해진 건지 사과의 목소리에 깨발랄함이 잔뜩 묻어있었다. 평소 내가 아는 모습이었다.

친구들과 놀다가도 동생이 혼자 어디로 뛰어가면 놓치지 않고 따라갔다. 친구들도 우르르 따라갔다.

한참을 멀리서 앉아 지켜보다가 아이들 소리가 들리지 않아 가까이 가보았다.

친구들이 핸드폰으로 무언가를 하고 있고 아직 폰이 없는 사과는 옆에 꼭 붙어서 쳐다보고 있었다.


재밌게 놀았어? 이제 밥 먹으러 가야 해
저희 사진 찍었어요. 이것 보세요.
사과 엄청 예쁘게 나왔어요~


카로 넷이서 찍은 사진을 들이밀었다. 그새 많이도 찍었다. 내 눈에 모두가 제대로 나온 사진이 없어 보였다.


이모가 한 장 찍어줄까?
네네!!


나에게 폰을 맡기더니 넷이 쪼르르 앉아 각자 포즈를 취했다.


하나 둘 셋 찰칵!
하나 둘 셋 찰칵!
하나 둘 셋 찰칵!


장난처럼 오두방정 떨며 입으로 사진 찍는 나를 향해 넷은 부산을 떨며 박자 맞춰 포즈를 바꿔주었다.

아이들의 얼굴에 웃음이 만발했다.

그걸 보는 내 눈에도 꽃이 피어났다.


내일 학교에서 만나! 다음에 또 놀자 안녕~


사과는 집으로 가면서도 계속 뒤를 살폈다.

친구들은 미끄럼틀 위에 올라가 손을 흔들어주었다.


엄마~ 나 새로운 친구가 또 생겼어~


아주 뿌듯해하는 사과의 표정이 보였다.

실실 웃음이 새어 나왔다.



돌아서 걷는 길에 피어난 목련을 보고 사과가 그랬다.


우와~ 여기 꽃이 폈네. 무슨 꽃이지?
진짜 봄이 왔나 봐!
난 오늘 처음 봤어. 엄마는 알았어?




엄마도 몰랐어. 사과가 이만큼 큰 거.

엄마도 모르게 또 이만큼이나 자랐네.

오늘도 예쁘게 피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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