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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콤한복이 Feb 18. 2023

알록달록 투명 핸드폰


엄마, 하늘나라에도 핸드폰이 있을까?


아이가 색칠하기에 정신 팔려서 웅얼웅얼 흘린 소리에 피식 웃음이 났다.

그래, 그러면 진짜 좋겠지, 얼마나 좋을까.





우리 엄마의 첫 번째 핸드폰은 한 손에 쏙 들어오는 작은 폴더폰이었다.

집에만 있는 사람이 핸드폰이 뭐가 필요하냐며 집전화 쓰면 된다고 했지만 , 핸드폰을 열었다 닫았다, 그날 엄마의 손이 바빴다.


본부, 대장님, 첫째 딸, 둘째 딸, 셋째 딸, 넷째 딸, 다섯째 딸,

단축키도 차례로 설정해 두고 핸드폰이 손에 익어갈 즈음 엄마는 문자 보내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했다.

컴퓨터도 만져보지 않은 엄마는 핸드폰으로 편지를 보내는 것을 신기해했고, 비록 오타가 많고 얘기를 끝맺지도 못한 채 전송되기 일쑤였지만 엄마와 문자를 주고받는 것이 나에게도 새로운 즐거움이었다.


평소 애교도 별로 없고 말도 살갑게 하지 못하는 셋째 딸은 문자로나마 엄마에게 예쁜 말을 한가득 적어 보냈다.

엄마 역시 그랬다.

띄어쓰기가 꼬박꼬박 되어 있는 엄마의 서툰 문자를 받으면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두 통, 세 통 이어서 보내도 될 텐데 엄마는 그 한통에 할 말을 모두 적느라 애쓴 흔적이 너무도 눈에 훤히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차츰 엄마의 문자가 짧아지기 시작했고 잘 쓰지 않다 보니 결국 엄마는 문자 보내는 방법을 잊어버렸다. 많이 아프면서부터 엄마는 다 귀찮아지는 듯했다. 그래도 우리가 보낸 문자를 읽을 수는 있다는 게 다행이었다. 예전처럼 문자를 잘 읽었다는 답장은 오지 않았지만 엄마가 읽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지독하게 시리도 찼던 2월, 엄마를 먼저 떠나보내고도 나는 한동안 엄마에게 문자를 보냈다.

받지 않을 걸 알면서 괜히 한 번 걸어 본 전화에 그렇게 울어댔는데 어쩐지 문자는 괜찮았다.

여전히 답장은 없었지만 예전처럼 엄마가 읽고 있을 것만 같았다.


방정리를 하다가 작은 수첩에서 엄마의 글씨를 보고는 울음이 터져버렸다는 얘기도,

엄마가 먹고 싶다고 했던 미역초무침이 오늘 점심메뉴로 나왔다는 얘기도,

엄마가 너무 보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얘기도.


그렇게 주인 없는 작은 핸드폰에 재잘재잘 이야기를 하며 나의 슬픔도 점점 단단해져 갔다.

그리움의 크기가 줄어든 건 아니었지만 감당할 수 없을 것 같던 일에 차츰 익숙해졌고 엄마의 처음이자 마지막 핸드폰이었던 작고 하얀 폴더폰을 끝으로 엄마의 흔적도 어느새 정리되어 갔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나는 일상으로 돌아갔다.





아니, 사람은 죽어서 안 보이는데 핸드폰을 들고 간다는 게 말이 돼?
언니, 투명으로 만들면 되지 않아?
투명이면 안 보이는데 어떻게 만들겠어.
그럼 다 만들고 색칠하면 되잖아~ 난 그럼 무지개색으로 색칠할 거야! 난 색깔 많은 게 좋더라. 엄마는 무슨 색으로 해줄까?


엄마는 아무 색이나 다 좋아, 예쁘게만 만들어줘.

이다음에 꼭 들고 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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