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봄
흔히 거주 공간 하면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을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아니다. 나에게는 ‘제2의 거주 공간’ 이 따로 있으니, 바로 설계실이다. 설계실은 건축을 전공하는 사람들에게 매우 익숙한 장소 중 하나다. 마감 기간에는 설계실을 나가면 집을 나간 거 같아 마음이 불편하기까지 하다. 저학년 때는 설계실에서 밤을 며칠씩이나 새곤 했지만, 고학년 때는 이상하게도 그럴 만한 체력이 없어 아침 일찍 첫차를 타고, 밤에는 막차를 타고 돌아와 집에서는 잠만 자는 생활을 했다.
<1> 설계실에서는 어떻게 쉬는가
비록 학교에 수면실이 있지만 쓰는 이들은 매우 한정적이다. 왜냐하면 애초에 그렇게 크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있는 것 자체에 감사해야 한다) 그래서 ‘라꾸라꾸’나 ‘침대로 변할 수 있는 사장님 의자’ 같은 것을 가져와 책상 밑에 피고 자기도 한다. 쉴 때마다 자동적으로 눕게 된다. 무료할 때면 1층 문밖에 있는 봉원이 -공대 앞에 살고 있는 고양이- 를 보러 산책을 가거나 기분 전환을 위해 공대 앞에 있는 유일한 카페인 스타벅스에 나가곤 한다. 스타벅스에서 분반 사람들을 마주칠 때도 꽤나 있었다.
<2> 설계실에서 어떻게 먹는가
수업이 끝나고 집에 갈 힘이 없어 배고플 때나 설계 중간 무언가를 먹어야 할 때 동기들과 배달 음식을 시켜 먹곤 했다. 그러나 해를 거듭할수록 모든 것을 시켜 먹을 순 없기 때문에 편의점에서 때우거나 도시락을 싸 오기도 한다. 특히 4학년 2학기때부터는 도시락을 많이 먹었다. 심지어 5학년 1학기에는 분반 친구들과 언니들의 대부분이 도시락을 싸와 재미로 비공식 동아리 ‘건도동(건축 도시락동아리)’을 만들기도 했다. 분반 친구들과 언니들은 주로 파스타를 요리하거나 반찬을 싸왔다. 나 또한 밥과 반찬, 국과 과일까지 알차게 준비하기도 했다. 건강과 소소한 재미까지 한 번에 챙기니, 이보다 좋은 식단은 없을 것 같다. 밥을 먹고는 무조건 아이스크림을 먹어야 설계를 시작할 수 있는 습관이 들어 나중에는 동기 언니들과 티코 (작은 초코 아이스크림이다)를 대량 배달시켜 냉장고에 넣어 하나씩 꺼내 먹기도 했다.
<3> 설계실에서 어떻게 설계하는가
당연한 말이지만 설계실에서는 설계를 해야 한다. 설계만 하기엔 아쉽기 때문에 옆에 항상 무언가가 틀어져 있어야 한다. 필자 같은 경우엔 무한도전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을 들으면서 설계를 한다. 해당 프로그램을 매우 많이 봤기 때문에 소리만 들어도 무슨 장면이 나올지 상상이 간다. 분반 친구들과 언니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음악을 들으며 설계를 하거나 한국/외국 드라마를 틀어놓고 캐드 위에서 빠르게 손을 움직인다. 너무 심심할 때면 설계실을 돌아다니며 잡담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너무 급할 땐 당연히 무언가를 틀어놓을 여유조차도 없다. 그럴 때는 최대의 집중력을 발휘하는 수 밖에 없다.
<4> 설계실에서 어떻게 집으로 가는가
사실 그냥 집에 가고 싶을 때 가면 된다. 하지만 작업량이 많아 집에 가질 못하는 것이 서러울 뿐이다. 필자는 집에서 설계가 잘 안되는 편이다. 설계실에 도착해야, 아니면 최소한 카페라도 가야 설계가 잘 된다. 주변의 백색소음과 함께하면 집에 가기 위한 설계도 빠르게 진행되어 그날 할 일을 끝낼 수 있다. (물론 하면 할수록 좋아지는 것이 설계이지만, 최소한의 인간다운 권리는 누리며 설계하고 싶다) 가끔씩 설계실 앞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부러워진다. 통학 시간이 1시간 가까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도 집에서 설계실 문 앞까지의 거리가 멀지 않아 부담 없이 통학할 수 있다.
거주 공간에서 열심히 살고 있는, 오늘도 연필과 마우스를 드는 건축학도들에게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를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