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봄
결점이 없는 사람은 없다. 또한 결점이 없는 건축물은 없다.
1학년 1학기의 마지막 과제는 모듈을 다양한 방식으로 결합하여 하나의 표현작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당시의 나는 건축에서도 작품이라는 개념이 존재하는가에 대한 명확한 정의를 내리지 못했다.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다) 또한 작품이란 어떤 형태로 사람들에게 보이며, 건물뿐만이 아니라 또 다른 종류가 있는 것일까라는 고민을 하고 있었다. 단지 교수님들이 하라고 해서 만들어갔던 세부적인 드로잉 과제와는 달리, 대학교에 들어온 첫 학기인 1학년 1학기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과제였다. 그래서 나에게는 조금은 더 큰 의미였고, 심지어 팀으로 하는 첫 작업이기에 책임감도 더 가질 수밖에 없었다. 평소 친해지고 싶었던 동기와 선배 언니와 같이 작업을 하게 되었다. 다행히도 캐드 프로그램을 다룰 줄 아는 언니 덕분에 전개도와 도면 그 사이 어딘가의 경계가 넘나드는 2차원적인 것을 만드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들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하지만 또 다른 난관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과연 무엇을 만들 것인가?
재료는 종이 재질로 고정되었다. 교수님께서는 모듈과 모듈을 연결하는 데에는 본드 등의 접착제를 사용하면 안 된다고 말씀하셨다. 한 마디로 건축물의 특징이기도 한 구조적인 면을 고려하라는 말씀이었다. 그렇다면 종이를 접어서 어떻게든 연결해야 하는데, 딱히 좋은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어떤 과정을 거치며 작품이 나오는 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일단 손을 움직였다. 처음엔 형편없었다. 하지만 되든 안 되든, 뭐라도 했다. 종이를 접어보고, 칼로 잘라보는 과정을 통해 종이의 속성을 조금은 파악할 수 있었다. 직육면체, 정육면체, 사면체 등 여러 가지 모양을 접어 보고 홈을 파 연결해 봤다. 그 과정에서 조금씩 이전과는 다른 더 나은 방법이 보이기 시작했다. 결론적으로는 바닥면은 힘을 받을 수 있는 사각형 형태의 모양으로, 직각이 아닌 사선을 통해 다른 유닛까지 연결할 수 있게 하였다. 그렇게 각 유닛을 서로 연결하는 방식으로, 점차적인 형태가 완성되어 갔다.
이 작업의 핵심은 유닛과 유닛 간의 연결성과 안정성, 그리고 심미적인 완성도의 부분 안에 있었다. 그렇기에 각각의 유닛의 형태를 어떻게 구성하고 연결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정말 중요했다. 많은 고민과 회의를 거친 끝에, 총 네 번에 걸친 유닛 변형의 과정을 거쳐 최종 기본 유닛이 만들어졌다.
작은 유닛들이 모여 만드는 전체적인 형태의 중요성도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요소였다.
우리는 한옥의 처마 곡선이 가지는 미를 모티프로 하여, 한국 전통 건축 지붕의 높이 차이와 경사도를 자연스러운 곡선 미학으로 구현하기로 했다. 한옥을 단 하나의 작은 모듈의 집합으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유닛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하나의 유닛과 유닛을 결합했을 때, 곡선의 모양은 쉽사리 나오지 않았다. 기본 A 유닛을 변형한 B, C, D 유닛을 만드니 곡선의 모양은 구현할 수 있게 됐다. A, B, C, D 유닛도 모두 달랐다. 각 유닛은 기본 가로 5cm/세로 3cm였으며, 이를 바탕으로 서로 다른 크기와 형태를 가지고 있었다. 우리는 그들을 규칙성을 가진 형태로 배치하며 최종적으로 하나의 구조물이자 작품이 완성되도록 했다.
문제가 해결되는 듯싶더니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바로 구조적인 문제였다. 곡선을 구현하기 위해 상대적으로 크기가 작은 A와 B 유닛은 잘 연결되는 반면, 크기가 큰 C와 D 유닛끼리는 연결성이 떨어져 많은 유닛이 합쳐지게 되면 구조적으로 약할 수 있었다. 그래서 양쪽에 A와 B 유닛을 한 세트씩 추가하여 힘을 분산시켰다. 그 뒤의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되었다.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함과 동시에 C와 D 유닛이 만나면서 완전히 결부되지 않는 약간의 그런 느슨함이 자연스러운 곡선을 더 용이하게 만들 수 있는 요소가 되어주었다.
유닛은 세어보니 무려 2,029개였다. 약 한 달이 넘는 시간에 매일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설게실에서 모형을 뽑고, 조립하고, 연결했다. 그 결과 높이 1.5M의 작품이 완성되었다. 처음으로 그때 알 수 없는 감정이 들었다. 크리틱이 끝나고 다시 수정하는 작업은 힘들었지만, 시행착오를 겪으며 최종 결과물을 만들고, 발표하고, 여러 교수님의 말씀을 들어보고 동기들과 그 과정을 같이 겪는다는 것의 소중함은 지금의 내가 생각해도 ‘학생 때만’ 즐길 수 있는 시간이다. 마감이 끝난 며칠 후, 교수님께서 해주신 말씀은 4년이 지난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온갖 책들과 잡지들에 파묻힌 여름방학도 값진 경험이야. 학생 때 말고는 절대 할 수 없는 것들이지. 그리고 책 밖에 있는 지식들, 몸으로 체험하고 느끼는 감정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배우는 소통과 공감 능력이 모두 배움의 대상이고 건축가에게 필요한 지식이야.”
1학년 1학기, 건축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새내기는 자신이 무결(舞결)함을 깨닫고 건축에 눈을 뜨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