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극과 반응 사이

예상치 못한 자유

by 달하

논문 수정본을 제출하라는 독촉이 왔다. 논문 수정을 시작한 지 2개월이 벌써 지나다니.

아직 며칠 더 기한이 남아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아니었다.

내가 제출기한을 잘못 알고 있었다니?

전례 없던 일에 심장이 쿵쿵거리려고 시동을 걸고, 늘 그랬듯이 질문의 형식을 빌어 스스로를 비난하려는 목소리가 시작되고 있었다.


- 잠깐만. 별일 아니야.

믿어보기 실험과 함께 일상에서 잠깐씩 명상을 시작하고, 나에게 찾아온 가장 확실한 변화는 예상치못한 일에 당황부터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설령 일정을 놓쳐서 논문을 내지 못한다고 해도 내 삶에서 변화되는 것은 사실, 없다.

게다가 내일까지 기간을 준다고 하니 어디 한번 해봅시다.

잠깐 멈추고 선택한 대안이 훨씬 나아 보였다.

심장이 쿵쾅거리려다 조용해졌다.


그날 밤 열심히도 논문을 고쳤다.

새벽 1시.

전례 없던 상황에 "위기대응팀의 내"가 등장하여 할 수 있는 한 꼼꼼하게 논문 수정 작업을 해 나갔나 보다.

교신저자에게 이메일을 전송하고 씻으려는데, 아가가 울기 시작했다.

얼른 달래야 깨지 않는다! 이 시간에 깨면 우리는 모두 죽는다.

남편이 급하게 아가를 달래기 시작했지만 아가의 울음은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다.

이게 무슨 일이지? 나 자야 되는데?

아침에 저널 리뷰 때문에 8시까지 나가야 되는데?

머릿속에 다급한 알람이 울리기 시작했다.

- 잠깐만.

다시 한번 생각을 바라보고 대응할 태도를 선택했다.

- 논문도 했고 이메일까지 보내고 울어서 다행이야.


나도 곧바로 아가에게 출동했다.

안아도 울고, 몸을 버팅기어 바닥에 내려놓자 내려놨다고 또 울었다.

방에서 거실로 거실에서 방으로, 아가가 울며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으로 왔다 갔다 했다.

아가의 감정은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았다. 남편과 나는 아가가 우는 이유를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아가들은 인지능력이 발달하며 세상을 받아들이느라 혼란스럽다."


어느 책의 구절에 따라, 아가들이 밤중에 우는 이유에 대해서는 명확한 이유를 찾으려고 고민하진 않았다. 사전에 병원을 가야 할 일이 아니라면 다행이라고 남편과 생각의 합의점을 찾아두었었다.

- 아가야 너도 크느라 힘들겠다.


새벽 2시.

나는 결국 아가를 업고 밖으로 나갔다.

어느덧 밤에는 시원한 바람이 아파트 길목까지 찾아와 준 덕에 아가와 함께 시원함을 만끽했다.

인적 하나 없는 아파트 단지를 아가와 둘이 걷다 보니 풀벌레 소리가 고스란히 들렸다.

아가는 바깥으로 나와서인지 아니면 울만큼 울어서인지 등에 고개를 대고 잠잠해져 있었다. 등 뒤에서 풀벌레 소리를 따라 하며 꺄악소리를 냈다.

"아가 풀벌레가 재미있는 소리를 내고 있네."


바람과 풀벌레가 다독였는지 진정이 된 아가와 집으로 돌아왔다. 남편이 이어 아가를 재웠다.

잠깐 잠자리에 들었다가 아침 저널 리뷰에 참여하고 오늘의 일을 시작했다.

그리고 아침 11시.

재택진료를 위해 환자의 집으로 향하는 택시에 가만히 앉아있다 보니 웃음이 나왔다.

- 이 시간까지 많은 것을 했구나.

집으로 퇴원해서 잘 계실 수 있을지 걱정했던 환자의 컨디션이 다행히 잘 유지되고 있었다.

시장에서 사 온 식물의 모종을 심었다고 웃으시기에 새싹들을 사진에 담았다.


귀가하여 적는 노트가 온통 다행이다라는 말로 가득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도 감사하다는 구절이 뒤를 이었다.

원치 않는 갑작스러운 상황들에 대해 스스로가 반응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는 것에 무엇보다도 감사했다.


"자극과 반응 사이에는 공간이 있다.
그 공간에서의 선택이 우리의 삶을 결정짓는다.
우리에게는 그 공간을 선택할 자유가 있다"


오래전에 읽었던 빅터 플랭클 박사의 책 <죽음의 수용소에서>의 한 구절이 이제야 떠올랐다.

길었던 하루의 끝. 믿어보기 실험이 기대되는 순간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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