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벌리스트와 일상예술

by 달리아
'허벌리스트가 뭐야?'

몇 년 전 SNS에서 처음 허벌리스트라는 단어를 듣고선, 머릿속엔 '허 벌라*프', '플로리스트' 등의 단어들이 먼저 떠올랐다. 허브(Herb)에 직업을 나타내는 'ist'가 붙어 허벌리스트(Herbalist)라고 불린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꽃집을 지나다니며, 종종 애플민트나 로즈마리 같은 허브 화분을 사서 길러보기도 했고(모두 오래 키우지는 못했다), 라벤더 등의 꽃차도 좋아했던 터라, 허브를 전문적으로 배운다는 것이 끌렸다.


그 뒤로 수업이 열릴 때마다 지속적으로 관심은 갖지만, 두 아이들을 키우느라 바쁘기도 했고, 주로 강의가 지방에서 열리곤 해서 신청하기 어려웠다.


그러다가 올해 봄, 서울에 있는 도봉구에서 지원을 받아 허벌리스트 과정이 열린다는 소식에 반가워서, 보자마자 참여 신청을 했다. 우리나라에도 허벌리스트 교육을 하는 곳이 몇 군데 있으나, 이 교육과정에서는 숲이라는 자연 상태의 생태계를 밭에 그대로 옮겨 지속적인 농업을 시행하고자 하는 퍼머 컬쳐(Permaculture) 농법의 밭에 직접 허브를 심고, 기르고, 수확하며 허브를 배운다는 특징이 있었다.


4월부터 11월, 봄부터 가을까지 세 계절동안 어떤 허브들을 만나게 될지, 궁금했다. 수업 신청을 할 때 받은 교육과정을 보니, 장을 담그거나, 약이나 화장품까지... 허브로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다 배울 수 있을 것처럼 내용이 알찼다. 무엇보다 도시의 한가운데서 흙을 밟으며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이 가장 기대가 되었다.


몇 주 뒤 첫 수업 시간이 되어, 설렘으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도봉구 마을 텃밭 한편의 수업 장소로 향했다. 20명에 가까운 분들이 신청을 하셨다. 첫 시간에는 수십 가지 서양 허브들의 이름과 특징, 약성 등을 배웠다. 민트, 카모마일 등 평소 자주 접할 수 있는 허브도 있었지만, 쏘렐, 차이브 등 처음 듣는 허브들이 더 많아서 더 집중해서 하나하나 마음에 새기고자 했다. 그중 최근 우울증이나 갱년기 치료에 많이 쓰이는 세인트 존스 워트라는 허브가 '성요한의 풀'이라고, 이 허브를 우리면 피처럼 붉은색이 나온다는 것이 기억에 남았다. 그리고 마시멜로우는 원래 아프리카에서 하얀 뿌리를 주로 구워 먹는 허브였는데, 미국으로 건너가 설탕 등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이야기도 재미있게 들었다.


한 시간 정도 열심히 수업을 들은 뒤에는 숲밭(forest garden)에 가서 자료로 보았던 허브들의 향기도 직접 맡아보고, 잎도 따서 먹어보고, 자신이 몇 개월 간 책임지고 살필 텃밭 분양까지 받았다.

허벌리스트 과정 수업 자료와 나선형 숲밭

퍼머커쳐 숲밭은 정말 말 그대로 여러 식물들이 상생하며 자라는 밭이었다. 보통 밭에서는 한 두 가지의 단일 작물들을 재배하지만, 숲밭에서는 생강, 토마토, 옥수수 등 열매를 수확할 수 있는 채소들이나 배나무, 감나무 등 여러 나무와 함께, 땅을 건강하게 지탱해 주고 질소와 탄소 등을 잘 머금을 수 있는 콩과 식물이나 컴프리 등을 함께 재배하며 허브를 키운다고 했다. 이러한 다양성 속에서 가뭄이나 홍수도 더 잘 견딜 수 있는 식물들이 길러진다는 것이 우리 세상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만 같아 더 의미 있게 다가왔다.


봄날의 땅은 포근하고 향긋해서, 흙을 밟고서 밭을 누비는 것만으로도 몸과 마음이 부드럽고 따스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거기에다 여러 색과 향의 허브들을 하나씩 모으다 보니, 벌써 그 향기에 몸의 긴장이 풀리고, 마음의 무게가 덜어지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수확한 숲밭 속의 여러 허브들로 집에 와서 샐러드를 해 먹으며, 오늘 배웠던 허브들의 이름들을 잊을 새라 다시금 하나씩 불러보았다.


돌나물, 소렐, 고수, 박하, 타임, 레몬밤, 취나물, 차이브, 골담화...

열 가지가 넘는 허브들을 잘라서 담고 올리브유와 발사믹만 더했다. 모든 허브들의 고유의 향과 맛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며 정말 환희로운 맛이 났다.

샐러드, 허브차, 그리고 인도 카레와 장아찌로 한 상 차림


샐러드를 만든 김에 카레와 장아찌로 한 끼를 차려 가족, 동네 친구와 나누어 먹었다.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나니 마음까지 채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함께 밥을 먹은 이들도 나처럼 행복한 모습이었다.


"허벌리스트는 살리고 돌보는 사람이에요."


강의를 시작하며 강사이신 소란님께서 했던 말이 깊은 울림으로 전해졌다 점점, 일상이 치유고 예술이고 상담이고 살림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강사님은 수업 중 많고, 많은 허브 중 직관적으로 끌리는 허브 하나를 정하라고 하셨는데, 그 허브가 마치 수호천사나 숲의 요정처럼 자신과 주변을 치유해 줄 수도 있다고 하셨다. 그런 의미에서 한 해에 한 가지 허브만 깊이 제대로 만나도 좋다고 덧붙이셨다. 나는 학교나 여러 교육 현장 속에서 마음이 아픈 아이들과 선생님들을 많이 만나 가슴이 아파서인지, 심장에 좋은 차이브를 골랐다. 마치 쪽파처럼 생긴 허브인데, 보라색 꽃송이를 피우는 모습마저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왠지 허벌리스트 교육 과정이 마칠 때쯤이면 심장과 마음이 더 유연하고도 단단해질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앞으로 매주 흙을 만지며 허브들과 함께 하는 시간은 너무나 큰 충전과 자기 돌봄이 될 듯하다. 매 순간 잘 배우고, 글과 사진 등에 잘 담아서 내가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허브들이 지닌 치유의 힘을 잘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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