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를 세는 이유 (2)

by 담결

내가 튜터링을 맡게 된 해석학개론이라는 과목은, 수학과에서는 아주 어렵기로 악명이 높은 강의이다. 보통 학부 2학년에 접어드는 시기에 이 과목을 수강하지만, 극악무도한 난이도 때문에 전공 자체에 대한 거부감이 커져 이탈하는 학생들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런 점 때문에 학과에서 해석학개론 과목에 대해서만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했고, 그 결과 직전 해에 해당 수업에서 성적이 우수했던 선배들이 당해 그 수업을 듣는 2학년을 3명씩 맡아서 튜터링을 해주는 시스템을 만든 것이다. 개강 첫 주가 지난 후 교수님이 수강생들 중 튜티 신청을 했던 학생들을 모아서 무작위로 튜터를 배정해 주셨고, 개강 2주 차부터 일주일에 한 번씩 세미나실에서 튜터링 모임을 갖게 되었다. 나는 직전 교시에 강의가 조금 늦게 끝나버린 탓에 최선을 다해 뛰어오느라 숨을 헥헥대면서 세미나실로 들어갔다. 튜티들 얼굴을 보기보다 들어오자마자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했고, 다행히 1분의 오차도 없이 정확히 제시간에 도착했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자리에 앉았다. 물론 그 안도감은 오래가지 못했다.


“반가워요. 저는 3학년 이지민이고, 이번학기에 해개론 튜터를 맡게 됐습니다.”

“안녕하세요. 2학년 한유진입니다.”

“최선우입니다.”

“박한일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짧은 인사말이 오가는 사이에 나는 ‘한유진’이라는 이름과 얼굴을 보고 어디선가 낯익은 느낌이 들었다. 어디서 봤던 사람인가? 누구지? 우리 과 특성상 선후배 간 교류가 별로 없는 편이고, 나도 딱히 과생활을 줄기차게 하고 다니는 타입이 아닌지라 대학 생활에서 안면을 튼 사람은 아닐 것 같았다. 외현적으로는 한 학기 동안 튜터링 시간이 어떻게 진행될지 간단한 오티를 하고 오늘 준비해 온 1주 차 강의 내용 요약정리를 해주는 동안 내 머리는 쉴 새 없이 한유진이라는 인물을 어디서 만났던 것인지에 관련해 가설을 세우고 기각하고를 반복했다. 마지막까지 그럴듯한 답을 내리지 못한 채 첫 튜터링은 마무리됐다. 하지만 내가 고민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 한유진은 튜터링이 끝나고 다른 튜티들이 세미나실을 나갈 때까지 기다리다가 우리 둘만 남게 되자 나에게 다가와 머뭇거리며 먼저 말을 꺼냈다.


“저…. 혹시 저 기억나세요? 제가 초등학교 4학년부터 중1 때까지 지수랑 절친이었요. 몇 번이나 집에도 놀러 갔었는데.”

“아 지수 친구 유진이었구나. 오랜만이야.”

“잘 지내셨어요?”

“나는 뭐 3학년이라 진로랑 취업 생각해야 되는 거 빼고는 잘 지내. 너는 좀 어때?”

“하하… 고등학교 수학이랑 대학교 1학년 때 미적분학이 재밌어서 수학과를 온 건데, 2학년 되자마자 바로 후회했죠. 1학기 때는 어찌어찌 버티다가 2학기 때는 해석학은 도저히 안 될 거 같아서 튜터링 신청한 거예요. 선배는 수학은 괜찮은 거예요?”

“나는 솔직히 오히려 고등학교 때보다 지금 배우는 수학이 더 재밌어. 그래서 지금 졸업하면 대학원으로 가는 걸 우선적으로 생각 중이야.”

“우와… 역시 튜터 하실 정도면 전공이랑 잘 맞으신가 봐요. 저 정말 1학기 때 해개론은 이해 못 하고 냅다 외우기만 했던 부분이 많아서, 아마 이번 학기에 선배한테 말도 안 되는 것까지 다 물어볼지도 몰라요.”

“그러라고 있는 튜터인데 뭐. 같이 열심히 해보자.”


무심한 내 말에 한유진은 작게 웃었고, 다음 주에 보자는 인사를 나눈 후 세미나실을 나섰다. 나는 아주 오랜만에 과거의 한 단편을 마주하는 바람에 놀랐지만, 이를 드러내지 않고 침착하고 차분하게 반응했다. 스스로에게 뿌듯할 정도로 적절한 대응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마음 한편으로는 이번 학기가 만만치 않으리라는 직감이 들었다. 왜냐하면 한유진이 입에 올린 '지수'라는 이름은 8년 전에 죽은 내 여동생의 이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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