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단 Apr 23. 2021

사실은 말하고 있었어요.

듣지 않은 거예요.

 연못 한가운데 돌멩이를 던지면 그곳에서부터 작은 파장이 시작된다. 점점 넓은 원을 그리며 퍼져나가다가 연못의 가장자리를 때리고, 파장은 다시 돌멩이를 던졌던 그곳으로 돌아와 끝이 난다. 나는 이 글이 인간관계를 가장 잘 설명하는 글 같았다. 인간관계는 상대방이 존재한다. 이 때문에 나에게서 시작된 힘은 상대방에게 닿기 마련이고, 상대방은 어떤 힘으로든 반응하게 된다.


 우울로 인해 아픔을 겪고 있는 사람들 중 많은 수가 표현의 어려움을 갖고 있다고 한다. 자기의 생각, 감정 등을 표현하는 것이 무엇보다 어렵고, 점차 표현하지 못하는 자기를 탓하기도 하더란다. 하지만 그들을 만나보면 내 생각보다 혹은 그들 스스로가 평가하는 것보다 자기를 잘 드러낸다. 목소리는 크지 않으나, 조곤조곤 섬세하게 그렇지만 꾹꾹 눌러 담아서 마음을 표현한다. 그럴 때면 한 가지 생각이 든다. 그들은 왜 스스로 표현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시간이 지나면 한 가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다. 그들은 표현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표현할 곳이 없다는 것이다. 사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표현할 수 있는 공간에서 그들의 표현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 맞겠다. 이야기하고 싶은 것과 듣고 싶은 것이 다르면 그때부터 화자(話者)는 침묵하게 된다. 더 나아가 이야기하려고 했던 많은 내용은 사람들을 곤란하고 불편하게 만드는 틀린 것, 잘못된 것이 된다. 배출하지 못한 마음, 스스로에게도 오수(汚水)처럼 여겨진 마음이 저장고에 서서히 차오르는 걸 보면서 한편으로는  그 안에 잠긴다.


 귀한 내 자식이 도무지 입을 열지 않는다는 전화를 받는다. 입을 열지 않은 걸까. 아니면 입에서 나온 얘기가 기다렸던 내용이 아니었던 걸까. 나름의 상황, 역사를 다 알 수는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청자가 없이는 화자도 없으며, 연못 한가운데서 시작된 파장은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야만 끝이 난다.


Hoi an, Veitnam(2017)





이전 13화 고통 경쟁사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