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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단 Jul 03. 2021

고통 경쟁사회

 내가 중학교를 다닐 무렵에는 두발 규제가 엄격했다. 남자는 무조건 스포츠머리로 잘라야 했는데, 남녀공학에서 스포츠머리는 스트레스 그 자체였다. 서른이 넘은 지금에서야 그때의 내가 마냥 귀엽게 생각되지만, 그 당시 나는 머리스타일이 세상의 전부였고 머리스타일에 따라 울기도 했고 웃기도 했다. 


 고통은 주관적이라고 한다. 고통은 내적 세계에서 경험하는 개인의 영역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기준이 없고, 명확한 옳고 그름도 존재하지 않는다. 즉 누군가는 헤어스타일에 세상이 무너질 수 있고, 누군가는 연인과의 이별에 사계절이 지나도록 아파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세상(나와 네가 모인)은 고통을 객관화, 서열화한다. 사람들의 고통을 일렬로 세워놓고 순위를 매기기 시작한다. 그래서일까 우리들 사이에 이런 대화는 흔히 오고 간다. "너는 힘든 것도 아니야. 우리 회사는~", "내가 공부했을 때에 비하면 너는 쉽지", "솔직히 그 정도로 힘들다고 얘기하면 안 되지"


 어쩌면 우리는 이런 식으로 자랐고, 이런 식으로 위로 비스무리한 것을 받은 것 같다. 나보다 더 힘든 누군가가 존재하기 때문에 나는 힘든 게 아니라는, 그러니까 힘을 내라는 위로 같지만 위로는 되지 않는 무언가. 그리고 대화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생각한다. 앞으로는 힘들다는 얘기를 하지 말아야지. 그럼 나는 언제 마음껏 힘들어도 되는 걸까? 순간 억울함도 올라온다. 


 1년 가까이 고통스러운 상황에서도 침묵했던 아이를 만났다. 그 아이는 진즉 힘들다 말하고 싶었지만, 그게 뭐가 힘든 거냐는 이야기를 들을까 무서워서 침묵했다고 했다. 아마도 그 아이가 경험했던 세상이 그랬을 것이다. 나는 있는 힘껏 힘들어하지 못한 그 아이를 보며 마음 한켠이 답답했다. 


많이 힘들었겠다.

네가 힘들다고 느낀다면 힘든 거야.

너보다 더 힘든 사람이 있다고 해서 네가 힘들지 않은 건 아니야. 


Budapest, Hungary(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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