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장(김연숙, 박경리의 말)
고통도 슬픔도 있는 그대로 온몸으로 겪어내는 투명함 대신 필요나 불필요 유불리 혹은 화폐이익 여부를 요모조모 따져봅니다. 어쩌면 고통과 슬픔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감각불능의 상태에 더 가까운 것도 같습니다. 큰소리로 웃기, 눈물이 날 만큼 웃기, 하염없이 눈물 흘리기, 엉엉 소리 내어 울기 그런 일이 언제 있었나 싶습니다. 이래도 저래도 흥, 그야말로 흥챙이가 되어 시큰둥한 그렇고 그런 삶이 내 민낯이지 싶습니다.
나의 문장
'사랑도 일도 애매함은 폭망'이라는 글을 가까이하고픈 나는 아직도 청춘인가? 불확실함에 몸을 내던지지 못하는 요리조리 따지는 영리함을 나는 혐오하고 있다. 어쩌면 삶의 권태로움을 당연시하는 수동적 태도에 매몰차게 돌아서고 싶은 욕망인지도 모르겠다. 깨어있다는 것은 일상 속의 무뎌진 감각을 날카롭게 만드는 순수가 아닐까? 해맑은 어린이들의 슬픔과 고통을 오롯이 드러낼 수 있는 자유, 그런 자유를 나는 원한다.
원문장(폴블룸, 공감의 배신)
많은 이들이 공감이 없으면 안 된다고 믿는 것과 달리 증거는 엇갈린다. 친밀한 삶에는 공감이 가치를 더해주는 측면이 있다. 나는 이 점을 인정할 생각 인다. 그러나 모든 것을 종합해 보면, 내 결론은 이 책의 전반적인 주제와 일치할 것이다. 공감은 이로울 때보다 해로울 때가 많다.
나의 문장
공감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은 타인과 나를 연결하는 마음의 다리가 단단하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겠다. 타인에 대한 지나친 관심 혹은 타인의 문제를 우선적으로 걱정하는 헌신적인 사람의 경우 균형 잡힌 인간관계를 맺는데 오히려 해가 되지 않을까? 공감이 지나친 경우 타인을 과잉보호하려는 경향도 나타나니까 말이다.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할 때 더욱 괴로운 사람이라면 그 공감이 이롭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경계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공감이 지나치다는 것은 사실은 타인의 감정을 함께 느끼는 공감이 아닌, 나 자신이 타인에게 느끼는 연민인 것임을..
원문장(당신이 오해하는 하나님의 사랑, 조너선 리먼)
사랑과 심판이 궁극적으로는 서로 대치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이 둘은 우리가 사랑과 거룩함의 관계에서 본 것처럼 서로 조화를 이룬다. 하나님의 경륜 속에서 사랑과 법 사이에는 궁극적으로 아무런 긴장 관계가 없으며 이것을 깨닫는 일은 우리에게 커다란 도전을 준다. 법은 가장 사랑스럽고 소중한 것을 보호하는 수단이다. 살인은 법에 위배된다. 생명이 소중하기 때문이다. 거짓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법에 위배된다. 진리가 소중하기 때문이다.
나의 문장
나도 하나님의 심판이 두렵고 무서워 사랑의 반대말이라 생각할 때가 많았다. 하나님의 법, 곧 말씀을 지키기가 하늘에 별따기만큼 어렵다며 푸념을 늘어놓기도 했으니까... 사랑하기에 보호해야 할 울타리를 만들어 주는 일은 어쩌면 가장 소중하고 가장 사랑하는 이에게 하는 최고의 배려가 아닐까? 부모의 진정한 사랑을 깨달아 가는 자식은 부모를 공경하고 그들이 준 법을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이라고 해석하게 될 테니까.
Dana Choi, 최다은의 브런치북을 연재합니다.
월 [나도 궁금해 진짜 진짜 이야기]
화. 토 [일상 속 사유 그 반짝임]
수 [WEAR, 새로운 나를 입다]
목 [엄마도 노력할게!]
금 [읽고 쓰는 것은 나의 기쁨]
일 [사랑하는 나의 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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