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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애 Nov 27. 2023

당신 안에는 좋은 이야기가 있어요

  조카는 우리 집에 오면 가끔 기타를 연주한다. 장롱 옆에 세워놓은 기타를 처음 발견한 날, 조카는 “기타!” 하고 외치더니 다가가 자유롭게 줄을 튕기기 시작했다. 나와 내 여동생에게 “노래해요.” 하더니 한참을 즉흥 연주에 빠져 있었다.

  기타는 어떻게 우리 집에 오게 되었던가―그것은 이야기에서 시작되었다. 나는 기타를 연주하는 소녀에 대한 소설을 쓰다가 기타를 배우기로 했다. 기타가 전면적으로 등장하는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왠지 배우고 싶어졌다.

  우리 집에서 가까운 기타 학원은 두 곳이었다. 한 곳은 주로 어린이 대상 수업을 하는 것 같았고 따로 ‘학부모반’을 모집한다고 쓰여 있었다. 물론 부모가 아닌 사람도 수업을 들을 수 있겠지만, 어린이도 어머니도 아닌 나는 선뜻 마음이 가지 않았다. 다른 한 학원은 소개 글과 학원 사진을 보니 마음 편히 배울 수 있을 것 같아 그곳을 찾아갔다.      


  내가 찾아간 기타 학원은 아담하고 편안한 분위기였다. 첫 수업 날, 창밖으로 저녁 하늘이 보이는 자리에서 통기타와 하얀 의자, 까만 보면대가 나를 맞아주었다. 피아노를 배운 지도 워낙 오래되어 악보 읽는 법도 가물가물하던 겨울날,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다. 기타 줄을 누르면 손가락이 아프다는 걸 전혀 몰랐던 나는 당황했지만, 얼마 지나니 통증이 줄고 익숙해져서인지 개의치 않게 되었다. 

  4비트 연주법을 배우다 처음으로 8비트를 배우게 된 날, 수업이 끝나갈 즘이었다. 그날은 조금 일찍 도착한 다른 수강생이 칸막이 뒤에서 수업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내 연주를 듣고 있는 사람이 있는 데다, 왼손은 익숙지 않은 코드를 잡고 오른손은 평소의 두 배 속도로 연주해야 하는 상황에서 긴장한 나머지 음치 박치의 심히 심란한 연주를 해버렸다.

  게다가 내가 연주한 곡은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였는데, 몹시 아름답지 못한 연주에 당황스러우면서도 웃겼다. 선생님은 난감한 연주를 듣느라 많이 힘드셨을 텐데도, 음이 제대로 나게 코드를 정확히 누르고 천천히 연주하면 된다고 격려해주셨다.

  내 연주는 조금씩 나아졌다. 나는 쓰던 소설을 봄에 완성해 공모전에 제출했고 떨어졌다. 어쩌면 나는 이야기를 쓰려고 기타를 배운 게 아니라 기타를 배우려고 이야기를 썼는지도 모른다. 누가 알겠는가, 삶의 신비로운 흐름에 대하여.     


  선생님은 기타 소리는 연주자의 내면을 보여준다고 하셨다. 어느 날 선생님은 내 연주를 듣고는 내 안에 좋은 이야기가 있다고 하셨다. 그 말은 이야기를 쓰는 내게 힘이 되었다. 글 쓰는 사람들은 자신의 글이 가치 있는지, 자신이 좋은 글을 쓸 능력이 있는지 의심하고 흔들리기 마련이다. 글 쓰는 데 가장 큰 장벽은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심일지도 모른다. 그럴 때 누군가의 따스한 한마디는 얼마나 큰 힘이 되는가.

  선생님이 말씀하신 ‘이야기’란 글을 포함해 자신이 펼칠 수 있는 가능성일 것이다. 그림이든 요리든 농사든 우리는 어떤 통로를 통해 우리의 고유한 아름다움을 풀어낼 수 있다.     


  여름날, 기타 학원의 두 선생님이 수강생들을 초대해 작은 연주회를 여셨다. 평소 우리가 기타를 배우던 공간은 자그마한 무대와 관객석으로 변신했다. 창에는 하얀 블라인드를 내리고 무대 뒤로 검은 커튼을 치고 은은한 조명을 켜자, 교실은 멋진 무대가 되었다.

  마음을 움직이는 두 선생님의 연주를 들으며 생각했다. 분쟁이나 전쟁 지역 어린이들이 평화 속에서 이런 아름다운 음악을 들으며 살 수 있다면― 전쟁을 일으키는 사람들을 포함해 우리는 삶에서 아름다움을 충분히 접하지 못하기 때문에 결핍을 느끼고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아닐까? 우리가 자연 속에서 있는 그대로 아름다운 생명들을 만나고, 일상에서 음악을 비롯해 예술을 통해 아름다움을 넉넉히 누릴 수 있다면 세상의 많은 문제가 줄어들지 않을까? 그런 삶 속에서 우리는 가슴속에 품은 반짝이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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