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 아이를 위한 기도
지금은 두 아이를 육아하고 있지만, 나도 한때는 다둥이맘으로 세 번째 아이를 꿈꿨던 적이 있었다. 계획적으로 임신 준비를 한 것은 아니어서 우리 가정은 기쁨, 축하보다는 당황스러움과 놀람이 먼저 앞섰다. 모든 사람들에게 축복받기 어려운 상황에서, 우리는 그렇게 세 번째 아이를 받아들이려 노력했다. 먼저 경제적 지원이 우선이었다.
시댁에는 알리지 못하였지만 나에게는 친정이라는 울타리가 남아있어서 조심스럽게 알릴 수 있었다. 당연히 우리 부모님은 무척 좋아하셨다.
엄마는 "딸아, 네가 진정한 애국자다. 요즘 같이 어려운 시기에 아이를 갖는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이니."
그런데 나는 그렇게 엄마, 아빠의 기쁜 반응에 맞장구를 쳐줄 수 없었다.
"엄마, 그런데... 주변에서는 많은 걱정을 해요. 경제적인 부분부터 아이들의 정서적인 부분까지요. 지금도 우리 둘째, 이제 막 돌 지났는데 갑자기 셋째 임신 소식이라니요."
"큰 애가 동생은 받아들였지만 우리와 한 식구가 된다는 과정에서 많이 힘들어했던 것도 있었으니깐요."
"그래, 그런데 아이는 얼마나 예쁘겠니. 그것도 축복이고 신이 내려준 선물이란다.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여야지. 요즘 난임으로 어려운 산모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건 감사한 거란다."
엄마는 그렇게 파워 긍정으로 나를 다독였다. 부모님의 울타리에서 조금은 기댈 수 있다는 마음에 한시름 놓았지만 그래도 불안했다. 한편으로는 차라리 이 아이가 자연적으로 유산되기를 바라면서도 제발 건강하게 잘 자라주기를 바랐다. 이 얼마나 비겁하고 복잡한 양가감정인가.
나 자신이 미웠고, 남편이 미웠고 나를 축복해주지 않는 주변 사람들이 야속했다. 하지만 알았다. 현실적으로 생각했을 때 이제 막 성장하고 있는 두 아이들의 양육은 어떻게 잘할 것인지. 아니 잘한다기보다도 별 잡음 없이 생활이 유지가 될지가 걱정이었다.
셋째 임신을 알기 전, 나는 처음으로 태몽을 꿨다.
첫째, 둘째 때 경험해보지 못한 황홀한 꿈이었다.
바깥 풍경은 황금빛으로 반짝였고 주변은 사과나무가 가득했다. 내 품보다 큰 사과들이 잔디밭과 산책로마다 무겁게 내려 앉아 있었다. 공원산책로에도, 잔디밭에도, 큰 사과들이 있어서 나는 놀라며 그 풍경을 바라보고 감탄했다. 붉은 빛깔을 띈 사과는 잘 익어서 제법 탐스러웠고 사다리차를 이용해서 사과를 따는 농부들도 보였다. 모든 게 다 아름답고 예뻤다.
어떤 노부부는 공원에 놓여있는 큰 사과 위에 앉아 마치 벤치처럼 활용하며 휴식을 하기도 했다. 나도 저 사과들을 가지고 집에 가고 싶다며, 높이 달려있는 사과는 가져갈 수도 없고, 사과 열매가 떨어질 때까지 기다릴 수도 없었다. 나는 망설이며 걷다가 공원 산책로에 놓인 큰 사과를 품에 안았다. 이걸 집에 가져가면 식구들이 좋아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속으로 이걸 가져가도 되나 싶었지만, 주변 사람들이 품에 안고 가져가는 모습을 보고 그래도 되나 보다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기쁜 마음으로 커다란 사과를 품에 안고 떠났다. 그리고 꿈에서 깨어났다.
한 달이 좀 안되어서 몸이 이상함을 느꼈다. 생리날짜가 미루어지면서 혹시? 설마? 하는 불안함을 느꼈다. 설마 여기서 셋째는 아닐 거야. 하지만 그 특이한 꿈이 생각났다. 큰 사과를 품에 안고 집으로 걸어가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바로 임신테스트기를 해보고 양성 반응을 확인한 뒤 산부인과에 갔다. 임신이었다. 아기집 자리가 잡혀서 심장이 뛰는 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나는 걱정되는 마음에 선생님께 여쭤봤다.
"제가 잘할 수 있을까요?" 둘째 분만을 맡아주신 선생님이셨기에 나를 잘 알고 계셨다.
"그럼! 할 수 있지. 괜찮아. 예전에도 잘했잖아!"
그렇게 나는 힘찬 응원을 받고 안심을 하며 돌아갔다. 그리고 정기검진을 받아야 하는 4주 뒤, 아침 9시에 초음파 검진을 봤다.
그날은 첫째 유치원의 첫 학부모 참여수업날이었다. 다섯 살이 되어서 처음으로 엄마가 함께 하는 수업이라 산부인과 진료 일정을 오전 첫 시간으로 예약했다. 진료실로 들어가 침대에 누워 초음파를 보는데... 그런데... 선생님께서 말씀이 없으셨다. 그리고 정적이 흘렀다.
몇 초간의 침묵 끝에
"지난번에 혹시... 아기 심장 뛰는 소리 듣지 않았어요?"
"네... 선생님... 맞아요."
"그래요..."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진료실 의자로 돌아앉으셨다. 그리고 어떤 표정과 말로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선생님의 얼굴을 읽을 수 있었다. 내가 먼저 이야기를 꺼내기를 바란 모습이었다.
"선생님... 혹시... 유산인 건가요?"
그 물음에 바로 즉각 대답하는 선생님이었다.
"네... 하..."
마치 신이 나에게 마지막 하루를 통보하는 기분이었다. 절대로 울지 않을 거 같았던 복잡한 감정은 슬픔으로 가득 찼다.
'왜... 아가야... 왜... 많은 사람들의 축복을 받지 못해서 네가 스스로 떠난 거니.'라는 마음속 질문을 시작으로 그렇게 진료실에서 한참을 훌쩍였다. 그리고 나는 마음을 가다듬고 바로 큰 애의 유치원을 향했다.
눈물을 흘리며 마음을 잡기 어려운 나를 주변 엄마들이 따뜻하게 안아주며 토닥이며 위로해 주던 그 날들, 그리고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진정하고, 첫째와 함께 즐겁게 애써서 참여하려던 어색한 나의 모습이 싫었다.
'엄마라는 사람이, 당신의 아이가 죽었는데 어찌 이렇게 태연하게 수업에 참여할 수 있는가.'
'제 아무리 원치 않는 임신이라 하였지만 어찌 이리 매정하고 죄책감도 없는가.'
겉으로 외치지 못한 절규와 울부짖음을 마음속에서 수없이 외쳤다. 집에 돌아와서 남편에게 유산 소식을 얘기하고 늑대처럼 그렇게 울었다. 미안함, 죄책감, 부담감이 복합적으로 뒤섞였다. 엄마와 통화를 하며 나는 울부짖었다.
"나, 엄마 자격이 없는 거 같아. 지켜주지도 못하고... 왜 나에게 아이를 데려간 걸까. 엄마 너무너무 미안해서 도저히 못 버티겠어. 엄마 애플이가, 아가가 떠났어. 내가 처음으로 꾼 태몽이라 사실 기대감이 컸거든. 정말로 멋지고 좋은 아이로 태어날 거라고 생각하고 상상했어."
엄마는 그저 울었다. 나와 같이 흐느끼며 같이 울었다. 힘내라며 기운 내라며, 그건 너 탓이 아니라며. 딸을 그렇게 위로했다. 혹여나 손주들보다 내 딸이 잘못될까 봐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엄마가 그렇게 함께 울어주셨다. 그날밤은 지옥 같았다. 신이 진짜로 있다면 왜 나에게 이런 메시지와 결과를 준 것이냐며. 그렇게 원망을 했다.
'왜 저에게 이런 시련을 주셨습니까. 애써 마음을 다 잡은 사람에게 왜 소중한 생명을 가져갔습니까.'
'당신이 저보다 더 나쁘고 더 비겁합니다.' '나에게 신은 없습니다. 믿지 않습니다... 당신을 원망합니다.' 라며.
나는 마치 악마를 물어 뜯는 사냥개처럼 그렇게 울부짖었다. 내 감정을 다 토해내지 못한 채 그 다음 날 나는 차가운 수술대 위에 올랐다. 잠시 깊은 수면에 빠지고 난 뒤 아이에게 제대로 된 작별도 못한 체 흐릿한 기억으로 간직했다. 그리고 몇 주 뒤...
나는 우리 아가를, 내 아가를 꿈에서 다시 만났다. 향기롭고 아름다운 귤꽃으로. 하얗고 귀엽고 예쁜 드넓은 귤밭에서 향긋하게 꽃 피우고 있었다. 싱그러운 잎들과 함께 어울리며 나의 아가답게 그렇게 지내고 있었다.
"다시 태어났구나. 너는 드넓은 귤밭에서 반짝이며 그 어떤 꽃보다 조용하고 고요하게 피어있었구나. 내 안에 잠시 머물다 간 향기로운 기억으로 남은 아가야. 사랑한다. 나의 귤꽃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