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빛의 문턱에

by 소극적인숙


윤찬과 헤어지고 수연은 조심스럽게 집 문을 열었다.

기억 속의 집안 풍경과 똑같아서 신기한 그녀는 인생에 첫 홀로서기를 하며 시작한 이 집을 다시 보는 게 무척 감격스러웠다.

설렘을 안고 처음으로 마련한 컵과 그릇, 주방장갑, 수건, 슬리퍼들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잃어버렸던 온기와 시간이 다시 그녀를 맞이하는 거 같았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바로 잡고 싶었다.

힘들었던 그때의 기억들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 퍼즐처럼 맞춰지길 바랐다.

순천만 갈대밭을 함께 거닐며 돌고 돌았던 두 사람이 다시 만난 그 순간, 모든 것이 치유되는 거 같았다.

"이대로도 괜찮아. 할 수 있어."

그녀 곁에 아무도 없지만 누군가가 들어주길 바라며 속삭였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다시 시작한다면... 그 사람을 다시 받아들인다면..."

수연의 시선은 현관문 코너 쪽을 지나 가까운 벽을 따라 달력에 멈췄다.

과거로 돌아온 시간을 세어보려고 손가락을 펴보자 갑자기 밀려오는 혼란스러움이 그녀를 덮쳤다.

식은땀을 흘리며 수연은 식탁 위에 놓인 종이를 급히 가져왔다.

홀로가 된 이후 윤찬과 재회한 시간을 떠올리며 펜을 들어 서서히 적기 시작했다.

"우리가 처음 만났던 그날, 남편 장례식장에서야. 적어야 해."

찌릿하는 통증이 그녀의 관자놀이를 자극하며 괴롭혔다.

차가운 공기가 수연을 감싸듯 온몸의 신경을 매섭게 찌르며 그녀를 얼게 만들었다.

수연은 멈추지 않고 펜을 들며 그림을 계속 천천히 그려가며 기록했다.

하지만 그녀의 손이 따라가 주지를 않았다.

"왜... 온몸이 굳는 거 같지. 춥고 차갑고 얼어붙는 느낌이야."


심장은 가슴을 찢고 나올 것처럼 미친 듯이 뛰었다.

그 뒤로 찌릿한 통증이 심장을 쥐며 수연의 호흡을 거칠게 만들었다.

정신이 혼란스러워지자 머릿속에서 맴돌던 목소리가 그녀의 귓가까지 퍼졌다.

그 순간, 그녀의 손을 따라 황금빛이 감싸며 일렁이기 시작했다.

빛은 온 세상이 밝도록 비추듯 더 넓게 퍼져 나갔다.

손 끝에서 감각이 멈추며 펜이 떨어졌다.

수연은 힘겹게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빛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며 그대로 쓰러졌다.




"...... 차려야 해." "눈을... 떠..."

"수연아! 수연아, 아니다. 이건 아니야... 아냐."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며 그녀를 괴롭혔다.

몸이 흔들리며 축축한 물이 계속 얼굴 쪽을 향해 떨어지고 있었다.

사이렌 소리가 들리며 흔들리는 들것 위로 도로의 감각이 느껴졌다.

따뜻한 빗방울이 얼굴을 따라 흘러내리며 차가운 몸이 조금씩 녹아내렸다.

눈을 떴을 때, 눈앞에 남자가 있었다.

윤찬이었다. 젊은 시절의 모습이었는데, 수연의 눈과 마주치자 얼굴이 떨리고 있었다.

"내가 보이니? 나야, 나 기억하지. 알 거야. 알잖아."


그러나 주름진 눈가와 엉켜버린 희끗한 머리가 선명해졌다.

노년의 윤찬이었다.

그의 떨리는 목소리가 그녀를 붙잡으며 다시 일으켜 세우려는 듯, 윤찬은 두 손을 모아 꼭 쥐며 수연의 손을 가슴 쪽으로 끌어당겼다.

"왜 모르겠어... 알지."

"정신이 드니, 아프면 안 되잖아. 어디가 안 좋아?"

윤찬은 죄책감이 몰려왔다.

수연을 붙잡으며 받아들여도 되는지, 스스로에게 묻고 있었다.

그녀 곁에 있는 게, 사랑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돌고 돈 시간이 애석하게도 두 사람을 받아 주지 않는다며 신을 원망했다.


"표정이 왜 그래. 나 괜찮아. 나이가 드니 뭐..."

"우리 나이에 이렇게 쓰러지면... 위험한 거 알잖아."

"맞네, 그러고 보니... 우리도 나이 먹을 대로 먹었지."

두 사람은 흘러간 시간이 아쉬웠는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침묵을 보였다.

"내가 다시 나타나지만 않았더라면..."

"윤찬아..."

"으응... 힘들 텐데 너무 말 많이 하지 말어."

"아니, 얘기해야 해."

"수연아... 네가 이렇게 아프지 않았을지도 모르는데..."

수연은 하얀 형광등 불빛으로 가득한 천장을 바라보다가 다시 잠에 들었다.

윤찬의 눈물이 계속 수연의 손등 위로 흐르자 수연은 젊은 윤찬이 생각났다.

그때도 윤찬이 울고 있었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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