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쳐버리겠다
밀려있던 빨래를 세탁기에 두 번을 돌렸다. 물차에서 파이프를 타고 지하에 묻은 물통으로 세찬 물줄기가 쏟아져 내리는 소리에 속이 다 후련하다. 하지만 물통 밑에 십 년 동안 깔려있던 진흙이 뒤집혔는지, 물상태가 안 좋다. 변기물이 황토색에다가 부엌과 세면대에서 나오는 물도 흙색깔이다. 그렇다면 세탁기로 쏟아지는 물도 황토색일 게 뻔해서 돌아가는 세탁기 뚜껑을 열어 봤다. 딸아이의 흰 티가 벌써 황토물이 들어버렸다. 우물을 파고 나서부터는 암반에서 나오는 물은 비가 와도 깨끗했다. 거기에 익숙한 나머지 케냐의 물상태를 잊고 지낸 거였다. 끝내 하얀 티셔츠를 락스물에 담갔지만 원상태로 돌아올 수없게 되었다.
둘째 아이가 졸업여행을 마치고 집에 오는 길이라며 왓집에 소식을 남겼다. 바닷가에서 나이로비로 오는 비행기가 연착되는 바람에 동생과 따로따로 집에 귀가를 했다.
"딸, 삼겹살과 스테이크 중에 어떤 걸로 먹을래?"
"삼겹살요."
역시 질긴 소고기보다 삼겹살을 좋아하는 한국인이다.
집에 딸이 들어오자마자 그녀는 4박 5일 동안 입었던 옷을 캐리어에서 꺼내놓으라고 했다. 세탁기를 돌릴 참이다. 하얀 옷들은 나중에 돌리려고 빼놓았다. 물상태를 몰라서 갈등이 되었으나 오늘은 믿어보기로 했다. 탈수가 다된 옷을 꺼내보니 황당하기 짝이 없다.
'아, 미쳐버리겠다.'
하얀 옷에 또 얼룩덜룩 흙물이 들어버렸다. 세탁을 담당하던 남편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