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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출장 중입니다. 나흘

물차를 기다립니다

by Bora

아침 7시, 밤새 잠잠하던 하늘이 날이 밝아오자 많은 비를 쏟아낸다. 물탱크 안에 메아리가 울릴 정도로 점점 물이 줄어들고 있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세탁기를 돌리지 않기로 했다. 커다란 바구니 안에 옷들이 가득 쌓인다. 그녀의 집은 나이로비에서 조금 벗어난 현지 마을 안에 있다. 이 동네엔 외국인이라고는 그녀의 집 밖에 없지만 5분 거리에 유럽 NGO 사무실이 있는 것 같다. 대학교가 방학을 때쯤에 외국인 청년들의 모습이 작은 타운에서 아주 가끔 눈에 띈다. 현지 마을에서 외국인이 산다는 것은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관심이 집중된다. 그러다 보면 안전에 신경을 써야 해서 불편함과 예민함이 동반된다. 이렇게 동반자가 된 두 마리의 개의 이름은 볼트와 곰돌이다.

아침 6시가 되면 개들은 개 집으로 들어가고 오후 5시가 되면 밖으로 나온다. 볼트와 곰돌이는 그 시간부터 다음날 아침이 될 때까지 집 주위를 돌면서 뛰어다니거나 천천히 걷거나 현관문 앞에 쭈그리고 앉아있는다. 두 마리의 개는 충성스러운 문지기이지만 시멘트 위로 개털이 작은 솜사탕처럼 뭉쳐 다니는 걸 보면 괴롭기는 하나 이 정도는 애교로 봐줄 수밖에 없다. 털뭉치를 튼튼한 빗자루로 바닥을 쓸어도 쓸리지 않으니 물청소가 최고인데 물을 끌어올리는 모터가 타버렸으니 물청소가 자꾸만 뒤로 밀린다. 집주위가 어수선할지라도 참을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오늘 아침에 한 시간쯤 비가 내려주니 반갑기 그지없다. 집주위를 빗님이 자동으로 세척을 해준 셈이다.


어젯밤 그녀는 남아공에 있는 그에게 카톡을 보냈다. "이번에는 공용물탱크가 아닌 개인 물탱크에 물을 따로 넣겠다"라고.

주인아저씨의 아들은 마음이 선한 사이먼이다. 대학생 때 그를 만났는데 이제 그의 나이도 사십을 코앞에 두고 있다. 그를 만난 건 선배를 통해서였다. 나이로비에서 외국인이 살만한 지역의 집세는 한국돈 백만 원은 기본이다. 13년 전에 생활이 녹록지 않았던 그녀와 그에게 청년사업가 사이먼이 제안을 했었다. 그의 아버지가 나이로비 인근에 땅을 가지고 있는데, 그곳에 집을 짓고 살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500평이라는 땅에 그와 그녀는 집과 센터를 지었다. 땅에 대한 사용료는 무료지만 15년 후에 건물을 돌려주는 게 조건이었다. 집을 짓고 약 2년은 개인이 운영하는 물회사에서 물을 구입했었으나 어느 순간부터 물값이 하늘로 치솟는 바람에 그와 그녀는 우물까지 파게 된 것이다. 암반 250미터를 뚫자 물이 솟아올랐다. 암반수 물이니 상태는 아주 좋았다. 그는 주인아저씨에게 "이 물을 사용하는 사람은 당신과 우리, 당신에 동생네 식구 그리고 센터뿐입니다. 당신께서 물을 팔고 싶으면 필요한 사람들에게 판매를 하세요. 수익금은 본인이 다 가지시면 됩니다." 그렇게 모든 운영권을 주인아저씨에게 드렸다. 물론 그네들은 정기적인 땅사용료는 안 냈지만 1년에 한 번, 주인아저씨에게 큰 용돈을 드리고 있다.


물차가 오후 5시에 도착을 했다. 지붕밑에 올려놓은 탱크에 물이 올라가는 가 싶더니 어느 순간부터 스위치에 불이 들어오질 않는다. 갑자기 머리가 혼미해졌다. 그녀는 왓집과 카톡으로 출장 중인 그에게 이런 상황을 알렸다.

"물차 한대가 5,000리터인데 집에 고작 2,000리터만 들어간 것 같아. 남은 물은 공용물통에 넣었어." 머릿속이 정리가 안된다. 남아공 시간으로 저녁 8시 30분에 그에게서 왓집 음성기능으로 전화가 왔다.

"스위치에 불이 안 들어오는 건 윗 물통에 물이 찾다는 거야. 그리고 물 때문에 아저씨랑 신경전을 벌이지 마. 우물을 파고 나서는 물값은 안 내고 살았으니 물 사는 돈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은 하지 말고."

속이 참 깊고 쿨한 사람이지만 그녀는 한편으로 약이 올랐다. 그러나 내일은 내일의 해가 또다시 뜰 것이 분명하니, 복잡한 생각은 훨훨 털어버리고 웃자, 웃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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