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가 필요해
혼자서도 자기 물건을 스스로 잘 챙기는 그는, 신혼 초 때부터 옷가게에 반듯하게 전시되어 있는 옷들처럼 커플에 옷을 잘 정리했다. 그녀는 위로 오빠가 셋이나 있었지만 이런 꼼꼼한 모습이 낯설기만 했다. 그는 위로 누나가 둘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가 섬세한 것이라고 설명할 수없을 것 같다.
그가 밤 10시 30분에 우버택시를 타고 조모케냐타 국제공항으로 출발했다. 그녀는 이런저런 일을 하다가 밤 12시에 침대에 몸을 눕히자마자 금방 곯아 떨여졌다. 깊은 잠에 빠져있던 그녀는, 전화벨 소리에 화들짝 깨어났다. 그에게서 온 전화다. 출국을 앞둔 그가 전화를 한다는 것은 급한 일이 일어났다는 것이기에 신속하게 통화버튼을 눌렀다.
"출국절차를 밟는데 황열접종카드가 없다고 들여보내질 않네. 남아공은 황열접종카드가 필요 없다고 알고 있는데... 기드온을 통해서 엘로카드를 보내줘."
그녀는 무거운 몸을 일으켜 세우곤 혼탁한 정신으로 그의 엘로카드를 찾아들고는 몇 번이나 영어이름을 확인했다. 새벽 2시 30분에 엘로카드를 쥐어진 기드온과 우버기사는 한 몸이 되어서 최대한 빠른 속도로 공항으로 출발했다. 그가 비행기를 타기 직전에 메시지를 보내왔다. 출국장에서 그에게 까다롭게 굴었던 사람이 아닌 다른 라인에 섰는데 그 직원은 엘로카드를 검사조차 안 했다고 한다.
"남아공 입국장에서 필요하지 않을까?" 그녀가 메시지를 보내자 "두고 보면 알겠지!"라며 속상한 마음을 내비친다. 억울한 것이다. 그의 출장을 위해서 몇 사람이나 새벽잠을 설쳤으니깐.
자기 뒤처리가 깔끔하고 확실한 남자지만 그도 아프리카에서는 어쩔 수 없나 보다. 그는 환승하는 에티오피아에서 가족방에 잘 도착했다고 소식을 올리고 남아공에 도착하자마자 가족들에 안부를 묻는다. 역시나 남아공에 입국할 때는 황열접종카드가 필요 없었다고 한다.
오늘 새벽엔 졸업 여행을 일찍 떠나는 딸아이가 집에서 출발이 늦어질까 봐 새벽잠이 많은 나를 깨운다. 그와 그녀, 사이를 두니 말로는 표현이 안 되는 어떤 새로운 감정이 일렁거린다. 그의 출장을 종종 환영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