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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뭐니

짝사랑

by Bora

위로 오빠만 셋이나 있는 나의 머리스타일은 엄마가 집에서 직접 가위로 잘라주는 쇼트커트였다. 여름철엔 거의 반바지를 입었고 다른 계절엔 바지에 윗도리는 티셔츠를 입었다. 그런 나에게 국민학교 5학년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마음속을 꽉 채운 한 아이가 있었다. 그 친구는 짙은 남색에 중간중간 붉은색이 들어간 체크무늬 남방을 즐겨 입었고 나와 다르게 위로 누나만 있어서 그런지 짓궂지 않았고 거친 욕설도 내뱉질 않았다. 또한 성격은 차분하고 조용했으며 얼굴까지 예쁘장했다. 그 아이에 이름은 N이다.


아마도 국민학교 3학년 때였을 거다. 짙은 아이보리 페인트가 칠해진 새 건물 3층에는 3학년 두 반이 입실을 했고 전교 학생들이 대청소를 하던 날이었다. 신문지를 꼬깃꼬깃 구겨서 창문을 닦고 나무바닥에 초를 칠해서 마른걸레로 반들반들 윤을 내며 오후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어떤 계기로 그 사건이 시작되었는지 아무리 생각을 해도 도통 기억이 나질 않지만 장난기가 유난히 많은 남자아이들이 나와 같은 동네에 사는 여자친구 K와 N를 엮어서 놀리기 시작했다. 마치 삼각관계처럼 말이다.

"아니야. 아니거든"

"정말, 아니라고"

나와 K는 개구쟁이 친구들을 좇아 다니면서 멈춰 달라며 간청을 했지만 그들은 그 자체가 재미있던지 청소가 끝나는 시간까지 놀림은 계속됐다. 나는 그전에 N이라는 아이가 같은 학년에 있었는지도 몰랐다. 3학년이었던 나는 4학년이 되고 그다음 해 5학년이 되면서 N과 같은 반이 되었다.

봄햇살이 눈부시게 빛나던 날, N의 눈 바로 위까지 내려온 앞머리 반들반들 윤기가 났고 콧등에 귀엽게 난 주근깨가 내 눈에 들어왔으니 그야말로 첫사랑이자 짝사랑이 시작된 거다.


초등학교 5학년과 6학년을 담임하던 선생님의 별명은 호랑이였다. 교사로서 학생들을 향한 애정이었는지 아님 개인적인 야심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그가 마음을 다해 가르쳤던 5학년 반은 유난히 총명한 아이들이 많았는데 그중에 N도 있었다. 우리 반은 호랑이 선생님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길 바라는 맘으로 6학년이 속히 되길 간절히 바랐으나 그 기쁨은 아주 잠시 뿐이었다. 학교는 학년마다 두 반밖에 없었던 터라 새 학년이 되면 아이들을 섞어서 재배치를 했지만 5학년 우리 반은 아이들도 선생님도 그대로 6학년으로 올라가게 된다.

선생님은 매일아침마다 천자문 5개를 칠판 왼쪽에 적어놓곤 하교할 때 쪽지시험을 봤다. 그로 인해 나는 한자 배우기에 재미를 붙였고 천자문을 다 외워버렸다. 거기에다가 선생님은 중학교 입학시험을 준비시켰으니 어느 때는 밤하늘에 둥근달이 떠서야 하교를 하기도 했다.


선생님의 열심은 본인이 근무하는 국민학교를 넘어 아산군 웅변대회가 열리기라도 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우리 반에서 적어도 2명은 대회에 참석을 시켰다. 그는 대회를 위해서 스파르타식으로 지도를 했으니 당연히 학생들은 트로피를 학교에 안겨다 주었다.

그의 정성 어린 지도는 결국엔 꽃을 피웠다. 일명 뺑뺑이를 돌려서 중학교를 배치받았던 그 시절엔 온양 시내에 여중 2곳과 남중 2곳이 있었는데 입학시험에서 우리 반 아이들이 남학교 1곳과 여학교 1곳에 일등으로 들어간 것으로 기억한다. 이 또한 호랑이 선생님의 열심 있는 지도가 있었으니 학생들은 그를 존경하지 않을 수없었으나 성적이 중간 지점에 있던 나는, 내심 그로부터 벗어난다는 해방감이 더 컸다. 시간은 흘러 우리는 국민학교를 졸업했다.


호랑이 선생님은 중학생이 된 우리들을 사후관리처럼 1년간 기말고사가 끝나면 성적표를 가지고 본교로 출두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럴 때면 나는 멀찍 감치에서 N를 지켜만 보았다. 그 누구도 눈치를 못 차리게 말이다.

N은 중학교를 졸업한 후에 수준이 더 좋은 다른 지역에 있는 고등학교에 입학을 했고 그로 인해 나와 그는 마주칠 기회조차 잃어버렸다. 그러다가 초여름이 시작할 무렵인 고등학교 2학년 때였을 거다. 우연찮게 막차 버스 안에서 키가 훌쩍 커버린 N를 보게 된다. 사실 마음속으로 얼마나 반갑고 좋았는지 가슴이 콩당콩당거리고 얼굴이 화끈거려서 그 친구를 쳐다볼 용기가 나질 않았다. 그게 그를 본 마지막이었다. 한여름 뭉게구름처럼 N를 향해있던 나의 몽글몽글한 감정은 내가 고향을 떠나오면서 거짓말처럼 사그라든다. 내 생에 첫사랑이자 짝사랑이 끝난 거다.


아주아주 오래전에 한 친구로부터 호랑이 선생님은 대전으로 전근을 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몇 해 전에는 친구가 보내온 유튜브에서 많이 늙어버린 선생님이 '유퀴즈 온 더 블록'에 나온 걸 보았다. 선생님은 어딜 가나 학생들을 향한 교육에 대한 마음은 진심이었다.


방글아

그토록 오랫동안 짝사랑하던 N에게 한 번쯤은 좋아한다고 고백을 했어야지. 살짝이라도 네 마음을 비취었으면 좋았을 텐데 정말 아쉽다. 만약 지금 같은 성격이라면 작은 쪽지에 너에 마음을 적어서 고백을 했을 텐데 그때는 왜 그렇게 부끄러움이 많았는지 몰라. 그렇지만 누군가를 열렬히 좋아한 마음은 너무나 귀한 것이기에 너의 십 대에게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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