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소녀
앨범 속에서 나의 어렸을 때 사진을 보면 항상 두 볼이 잘 익은 사과처럼 빨갛다. 백지장처럼 하얀 친구들의 얼굴을 볼 때면 나의 볼을 맞바꾸고 싶을 만큼 부러웠다. 볼의 빨간 정도는 핑크빛을 뛰어넘어 한겨울에 밖에서 놀다가 따뜻한 방 안으로 들어오거나 교실에 놓여있는 난로가로 가면 화끈거리며 열까지 났으니 한마디로 불타는 고구마와 다를 바가 없었다. 누가 먼저 말하지 않아도 쳐다보지 않아도 나의 온신경은 볼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때는 선크림이 흔하지 않았고 학생이 화장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얇은 피부 속에 핏줄을 감출 수가 없었다.
내 피부는 태생적으로 벌레에 물리거나 독이 있는 풀에 잠깐만 스치기라도 하면 금방 부어오르고 손에 물이 자주 닿으면 물집이 생길 정도로 약하다. 얼굴피부가 유난히 여린 바람에 여드름은 나질 안았지만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처럼 빨간 두 볼은 나의 콤플렉스가 돼버렸다.
"내 볼은 왜 이렇게 빨가냐잉. 아주 그냥 주사기로 핏기를 빼고 싶다잉."
"그게 얼마나 좋은 건디, 나중에 얼굴에 볼터치를 안 해도 되구. 괜찮은겨"
친구들의 이런 말은 진심으로 위로가 안 되었다.
두 볼은 사춘기가 시작되면서 더 빨개졌다. 학교를 오고 가는 길에 혹시라도 아는 얼굴이 저 멀리에서 다가오면 쥐구멍에 숨어 버리고 싶을 정도였으니 과히 나의 부끄러움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물론 상대방에게 최대한 티를 안 내려고 노력하지만 그와 거리가 좁혀지면 나의 마음과는 다르게 어김없이 두 볼이 달아오르기 시작하는 거다. 중 2와 중 3 때는 부끄럼과 볼의 색깔이 일치할 정도로 최고조였다.
6학년 봄학기가 시작하던 날에 우리 집은 동네 가운데로 이사를 왔다. 집 평수가 커서 안마당과 담너머로 텃밭도 있고 방도 개수가 더 많아졌지만 나는, 꼭대기집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산으로 둘러싸인 집까지 울려 퍼지던 교회 종소리는 오히려 운치가 있었고 밤에는 적막하리 만큼 고요함이 좋았으나 새로 이사 온 집은 정말이지 동네 중심지에 있었다. 그로 인해 나의 사생활이 다 노출되는 것 같아서 대문밖을 나가길 꺼려했다. 그러다 보니 나의 행동 영역은 집과 학교를 가는 게 고작이었기에 책대여점에서 빌려온 책을 밤새 읽곤 했다.
그때쯤 나와 학년이 같은 동네 여학생들은 거의 다 교회에 나갔다. 친구들은 전도하려고 애를 많이 썼지만 난 콧방귀만을 뀌다가 고등학교 2학년 여름에 스스로 교회를 나가게 된다.
"니가 교회를 온 게 기적이다잉"
"하나님이 니를 엄청 사랑하는 겨"
"그려, 니가 은혜를 받은 게 분명혀"
교회를 처음 나간 나는 친구들에 말을 이해하지 못했으나 정말 기적처럼 부끄럼쟁이 소녀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어진다. 물론 두 볼이 빨간 건 변함이 없었으나 그건 더 이상 내게 중요하지 않았다.
방글아
무엇이 그토록 너를 부끄럼을 많이 타게 만들었을까. 하루아침에 꼭대기집에서 동네 중심으로 이사를 온 게 너의 감정변화에 영향을 끼친 것일까. 아니면 단지 빨간 두 볼 때문에 부끄러움을 그리도 많이 탔던 것일까.
그 덕분인지 넌 중학교 내내 방바닥에 배를 깔고 책 읽기를 좋아했어. 어찌 보면 그때가 참 좋았어. 아마도 너는 또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고 해도 책을 읽고 있을 거야. 그럼, 내가 네가 읽고 싶은 책이란 책은 다 사줄게. 화장품도 사주고 피부과도 데리고 갈게. 시술이 필요하면 받게 해 줄게. 근데 너 아니? 어느 사이에 너에 얼굴에서 홍조가 안 보이기 시작했다는 거야. 그건 알아둬. 사랑해, 방글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