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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준비가 아닌 취준생이 되다

고집을 부렸더라면 내 인생은 달라졌을까

by Bora

나에 세명의 오빠들은 모두 다 대학에 못 갔다. 아니 안 갔다. 공부머리가 있던 큰오빠조차 상고를 나와서 은행원이 아닌 공무원이 되었고 공부머리가 없던 둘째 오빠는 일찌감치 일을 선택했고 돈 버는 게 관심이 많았던 막내오빠 또한 대학에 가질 않았다.


일찍 철이 들은 오빠들은 집안 형편을 잘 알고 있던 터라 애초부터 대학을 안 가기로 결정을 했는지 몰라도 나는 달랐다. 중학교 3학년 때에 고등학교 입학을 결정하는 시기였을 거다. 부모님은 내가 당연히 여상을 간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여고에 가고 싶었다. 결국에는 아버지와 의견이 부딪히고 만다.

"오빠들도 안 간 대학을 지지배가 왜 간다는 겨"

"여상 나와서 돈 벌다가 시집이나 가면 되지, 웬 대학이여"


나는 끝내 여고보다 성적이 더 좋다는 사립학교인 여상으로 입학을 한다. 취업 1순위라는 상업과에서 자격증을 열심히 취득하기로 결심했다. 그 이유는 성적이 좋고 자격증이 1급이나 2급이 있으면 3학년을 졸업하기 전에 신입 사원을 채용하는 회사에 우선적으로 이력서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사춘기 전까지는 나름 가족들에게 사랑을 많이 받은 나지만 웬일인지 최대한 빨리 가족으로부터 분리되고 싶었다. 울타리가 없던 꼭대기집에서 자란 내가 아니었던가. 나는 뼛속까지 통제를 거부하고 본능적으로 자유를 갈망하는 아이다.

뉴타자 학원은 온양역에서 아주 가까이에 있었다. 나는 타자반 여선생님 하고 아주 친하게 지냈는데 주말엔 언제든지 학원에 와서 자유롭게 연습할 수 있도록 해주셨다.

현광등을 켜지 않은 강의실 의자에 혼자 앉아서 숨 한번 고르고 타자기 위에 손을 얹는다. 피아노 건반을 누르듯이 손가락 힘의 강약을 조절하면서 자음과 모음과 받침 글자를 눌러 가며 글자를 만든다. 손가락을 타고 하얀 종이 위에 검은색 잉크가 또박또박 찍히면서 문장과 문장이 만나 한 편의 글이 완성되어 간다. 눈으로는 책을 읽어가고 동시에 손가락은 타자기 자판을 정확히 눌러야지 정해진 시간 안에 많은 내용을 오타 없이 타이핑을 칠 수 있다. 그러려면 연습밖에 없었다.


'딸은 시집만 잘 가면 되지'라는 답답하고 보수적인 동네에서 떠날 수 있는 방법은 급수가 높은 자격증을 취득하는 것밖에 없었다. 여상에 다니고부터는 그 욕망이 내 안에 더욱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두고 보라지, 나는 서울로 튈 거다잉. 최대한 빨리'

'충청도 아산에서 내 젊음을 보낼 수는 없지잉'

그런 심정으로 손가락에 마치 바퀴가 달린 것처럼 타자기를 두드렸다. 그리곤 고 2학년 겨울엔 드디어 한글과 영문 타자 1급 자격증을 각각 취득한다. 고등학교 3학년 6월에는 기다렸다는 듯이 서울 강남역 부근에 있는 회사에 면접을 보곤 8월부터 출근을 하게 되었다.


두 볼이 빨간 어린 소녀는 직장에서도 막내라서 사랑을 받았다. 나를 면접한 과장님은 아산 사람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그가 고향 선배라는 게 내심 든든했으나 딱 거기까지였다.

내 눈엔 뭐든 서울은 달라 보였다. 처음 타보는 전철, 높은 빌딩, 어디든 도시 바닥에 깔린 보도볼록이며 뭐든 세련돼 보였고 괜스레 서울에 산다는 게 어깨가 으쓱해졌으니 여고가 아닌 여상을 다닌 게 자랑스러워지기까지 했다.


방글아.

대학을 그렇게 가고 싶었으면 부모님을 더 적극적으로 설득시켰으면 어땠을까. 네가 그때로 돌아가면 몇 날 며칠을 단식하면서 여고로 보내달라고 생떼를 부리면 갈 수 있었을까.

네가 고등학교 때 수능 준비를 못한 게 두고두고 아쉬웠구나. 그래도 네가 목표한 것을 위해 그토록 타자를 열심히 연습했던 터라 지금은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곧바로 노트북에 담을 수 있잖아. 여상을 다녔다는 걸 후회하지는 마.

앞으로 많은 기회가 네게 올 테니 두려워 말고 한 발자국씩 앞으로 걸어 나가면 돼. 무엇보다도 네 마음을 잘 지키렴. 내가 늘 지켜볼게. 사랑해, 방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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