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수원 집 딸
언제부터 우리 부모님은 과수원을 운영하셨을까? 동네 사람들은 나를 꼭대기집, 과수원 집 딸, 주생이 딸 (아버지 성함)이라고 불렀다. 집 바로 뒷산에 오르면 높은 능선 저 아래에 우리 집 과수원이 한눈에 들어온다. 산비탈길을 정신없이 뛰어내려 가면 과수원으로 곧장 갈 수도 있었지만 경사가 높고 우거진 숲을 헤치고 가야 해서 웬만해선 그쪽으로 가질 않았다. 학교 가는 넓은 흙길로 가면 소나무와 참나무, 아카시아 나무 숲을 지나고 개구리처럼 누워있는 몇 개의 무덤을 지나면 입구는 좁으나 아래로 내려갈수록 넓어지는 사방이 확 트인 곳에 우리 집 원두막이 있었다. 그 옆에는 여름 내내 그늘을 만들어주는 효자 같은 소나무가 우뚝 서있고 그 아래에 부지런히 일하시는 부모님이 계셨다. 아버지와 엄마는 과수원뿐 아니라 논에는 벼를, 밭에는 각종 채소를 재배하셨다. 그중에 과수원은 우리 집에서 가장 큰 수입원이었기에 온 가족이 정성을 들였다.
아버지의 손은 마치 마술사의 손처럼 과일과 채소를 가꾸는 솜씨가 아주 특별했으니 남들은 손사래를 치며 탄저병으로 다 죽어간다는 고추도 우리 집에서는 품질이 좋았다. 거기에다가 복숭아와 자두도 크고 맛이 좋아 우리 사 남매는 여름 내내 과일을 질리도록 먹었다. 복숭아 종류는 백도와 황도, 자두 종류는 3가지나 되었고 피처럼 속이 붉은 먹자두, 아기 주먹만 한 황금색 자두, 투명 한 빨간색인 예쁘게 생긴 자두가 있었다. 과수원과 집 근처의 밭에는 수박과 참외, 노각, 가지, 풋고추며 깻잎, 상추, 호박잎, 비름나물, 고춧잎, 마늘, 배추, 얼갈이와 열매가 심어져 있었다. 더불어 산은 아무런 대가 없이 우리에게 자연산 야생 딸기를 실컷 먹었을 수 있도록 자비를 베풀었으니 여름철에는 시장 갈 일이 거의 없었다.
집 둘레로는 감나무와 밤나무, 살구나무, 포도나무와 앵두나무가 있었고 여름철부터 늦가을까지 우리 가족은 탐스러운 강낭콩이 들어간 밥을 먹었다. 그뿐 아니라 겨울산에서 아버지와 오빠들이 알이 잘 밴 칡을 캐어 오면 달달한 칡을 껌처럼 씹기도 하고 햇볕에 잘 말려서 차로 끓여 먹어서 그런지 나는, 어렸을 때부터 감기가 잘 안 걸리고 비교적 건강하게 자랐다.
복숭아 수확철에는 과일 설이꾼들에게 손을 탔다는 소문이 동네에 돌기 시작하면 부모님은 저녁을 먹고 나자마자 원두막으로 자러 갈 준비를 하셨다. 그때마다 나는 부모님을 따라 어둑어둑한 산길을 따라 오르곤 했다. 원두막에 오르면 아버지는 커다란 배터리가 들어간 플래시를 건너편 과수원을 향해 좌우로 흔들며 큰 소리로 안부를 물었다.
"동상, 원두막에 온겨"
"형님, 저 왔어유"
"그려, 몸조심하구. 잘 자잉"
"그려유. 형님도 잘 주무셔유"
밤 깊은 산속 우주 공간에 아버지와 아저씨는 서로를 향해 안부를 물으며 조금이나마 안도감을 가졌을 것이 다. 산중의 밤은 사방팔방이 온통 깜깜해서 소름이 끼칠 정도로 무서운데 원두막 바로 앞에 무덤까지 있다 보니 나는 아버지와 엄마 사이에 끼어들어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잠이 들곤 했다. 그러나 어느 날은 밤이 깊어질수록 뻐꾹새와 이름 모를 새들의 울음과 산짐승들이 숲을 헤매고 다니는 소리로 쉽사리 잠들 수가 없었다.
여름방학이면 우리 사 남매는 부모님의 일손을 돕기 위해 기꺼이 과수원으로 향했다. 나는 부모님이 따놓은 복숭아 바구니를 비늘 포장을 넓게 깔아 둔 원두막 쪽으로 옮기거나 나무 상자에 탐스럽게 놓여있는 복숭아 사이사이에 나비 날개처럼 얇고 반들반들한 핑크빛 색지를 꽂는 일을 담당했다. 가끔씩 소나기가 한차례 씩 내리기라도 하면 부모님은 커다란 비닐을 복숭아 위에 덮어 놓고는 잠시나마 쉬는 시간을 가졌다.
아버지가 그 틈에 담배 한 대를 아주 천천히 맛있게 피우면 나는 원두막 위로 올라가서 겹겹이 싸놓은 신문지 더미를 헤치고 이야기를 찾아 읽었다. 그때쯤 유행처럼 나름 돈이 있는 사람들은 자녀에 대한 교육열과 부의 상징처럼 벽돌처럼 생긴 위인전집을 집에 들여놓았지만 우리 집은 그런 책 한 권도 없었으니 글을 읽을 수 있는 기회가 되면 나는, 인쇄된 글자를 허겁지겁 읽었다.
복숭아처럼 사랑스러운 과수원 집 딸, 방글아.
네가 문학을 사랑하게 된 시기가 아마도 과수원에서부터였나 보다. 그곳에서 부모님의 일손을 도우면서 짬나는 시간에 석유 냄새가 짙게 나는 신문에 코를 박고 이야기를 읽고 있던 너. 그렇게 문학에 대한 사랑과 감성이 몽글몽글 네 안에 싹트고 성장하고 있었던 거야.
방글아,
네가 소망하는 그 꿈이 언제일지 모르지만 꼭 이루어지길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