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역국에 빠진 양파

천연 다시다의 효능

by Bora

누군가로부터 받은 미역을 찬물에 불렸다. 한국을 방문하는 기회가 자주 없다 보니 한번 가기라도 하면 미역은 꼭 몇 봉지씩 사 오곤 한다. 건조식품이라서 오래 두고 먹을 수 있고 부피도 가볍다 보니 케냐 한인들 사이에서도 미역은 주고받는 재료이다.

불고기 요리를 위해 사 온 안심을 정리하면서 자투리로 얼려 놓았던 고기를 꺼내 놓았다. 불린 미역을 빡빡 문질러 씻어 물기를 빼는 동안 도마 위에 흰 마늘을 올려놓고 칼을 옆으로 눕혀서 냅다 손바닥으로 내려쳤다. 단단한 로칼 마늘이 한방에 으깨지며 알싸한 냄새가 올라왔다. 미역과 잘게 썰은 소고기와 마늘에 집간장과 피시 소스와 후추 가루를 넣고 마지막으로 참기름을 추가해서 버무렸다. 가스불에서 재료를 볶다가 진하게 끓여 놓은 육수와 물을 넣었다. 그 위에 보라색 양파를 반으로 뚝 잘라 띄워 30분쯤 끓인다.


스믈 세 살쯤이었을 것이다. 서울 화양동에 있는 지하 교회에서 교육전도사를 하고 있었다. 신학생 2학년이었던 나는 금요일이면 기숙사에서 나와 교회를 향했다. 주말이면 교회에는 집사님들이 주일예배를 위해 청소와 중식 준비로 분주했다. 바쁜 중에도 누군가가 요기가 필요하다 싶으면 여자 집사님들은 음식을 후딱 만들어 냈다. 때론 부추전과 김치전, 어느 때는 호박과 깻잎이 들어간 야채 전이나 김치를 볶아 잔치 국수를 말아내기도 하고 칼국수를 끓이기도 했다. 1주일 내내 기숙사 밥만 먹었던 나는 주말이면 교회에서 그나마 엄마의 손맛이 느껴지는 밥을 먹을 수 있었다.

전교인 150명쯤 되는 성도는 가족애가 넘쳤고 주일이면 주방에서 밥하시는 손길은 분주하고 교자상마다 어른, 아이들이 섞여 점심을 먹었다.

목사님 부부는 삼십 대 후반이셨는데 열정과 사랑이 넘치셨고 사모님은 보기 드문 미인이었는데 똑소리 날 정도로 다방면으로 아시는 게 많고 요리까지 잘하셨다.

어느 날 사모님께서 주방에서 미역국끓이고 있었다. 검은색 가운데에 하얀 무엇이 둥둥 떠있는 것이 보였다. 두부도 아닌 것이 그 희고도 흰 정체가 궁금해서 솥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 안에 양파가 얌전히 들어가 있는 게 아닌가. 신기한 듯 쳐다보고 있는 나에게 사모님은 미역국처럼 국물 양이 많은 국에는 양파를 넣으면 천연 다시다 맛을 낸다고 했다. 그날 이후 나는 미역국을 끓일 때면 무조건 양파를 넣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는 흰 양파를, 케냐에서는 보라색 양파를 넣는다.


막내를 2008년 11월 26일에 케냐에서 낳고 한 달 내내 미역국과 흰밥만 먹었다. 국그릇에 밥을 말아 후루룩 들여 마시듯 먹었다. 모유 수유를 했기에 세끼도 아닌 다섯 끼를 먹었다. 지금 생각하니 밥 대신 과일이나 샐러드를 왜 못 먹었을까 싶지만 아이 셋에 부모 가족 없는 곳에서 산후조리는 쉬운 게 아니었다. 허기가 지면 무조건 미역국과 밥으로 배을 채웠는데도 질리지 않았으니 신기할 뿐이다.

한여름 엄마가 만들어주셨던 미역 냉국이 생각이 난다. 오이와 마늘, 파, 조선간장 약간에 소금과 식초로 간해서 찬물을 넣어 먹곤 했다.

둘째 오빠의 생일은 겨울이다. 같은 동네에 살던 엄마의 시어머니 즉 나의 친할머니께서 산모를 위해 미역국을 끓여 놓으셨다고 다. 추운 겨울날 몸조리를 하는 엄마를 위해 아버지는 아궁이에 불을 지펴 미역국을 데워야 만 했다. 아버지는 솥에서 김이 한번 오르자 미역국 한 사발을 퍼 와 밥상에 얹어 놓았다고 다. 그러나 그날의 미역국을 엄마는 두고두고 말했다. 펄펄 끓지 못한 미역국은 오히려 비린내를 뿜어 냈다고 말이다. 그러나 엄마는 아직도 미역국을 좋아하신다. 온 식구 생일날이면 긴 미역을 불려 국을 끓이고 여름에는 냉국이며 초무침을 해 주셨다. 미역국 안에는 때론 감자를 잘라 넣기도 했고 모시조개를 넣기도 하다가 아버지 생신에 만 소고기를 넣으셨다. 어느 집에서는 미역국에 닭가슴살을 넣어 끓이기도 했고 어느 식당에서는 말린 홍합을 불려 넣기도 하고 간혹 생굴을 넣어 파는 곳도 있었다. 어쨌거나 미역은 팔방미인이다. 나는 가끔 마른미역을 뚝 잘라 한가닥을 입에 넣고는 잘근잘근 씹기도 한다.


흔하디 흔한 미역국을 끓여 보기로 했다. 음식 하나하나에 스토리가 담겨 있으니 재미가 난다. 음식은 단지 음식이 아닌 그 안에 추억과 사랑과 수고가 깃들어 있다. 내가 길지 않은 인생을 살아오면서 음식에 대한 추억이 이렇게 많은데, 우리 아이들도 살아가는 동안 그러할 것이다.

어느 젊은 날에 문득 기억이 새록새록 날 수 있고 어느 날은 그리움으로 목이 메일 수 있을 것이다. 그날에 아이들이 풀어낼 이야기는 나와 다를 수 있겠으나 마음이, 추억이 따뜻했으면 좋겠다.

바글바글 끓어오르는 미역국 안에서 진액을 쏟아내는 보라색 양파를 한참이나 한참이나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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