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아침 7시에 외출을 해서 오후 4시쯤에 집으로 돌아왔다. 이런 날은 아침부터 부지런을 떨었기에 영락없이 책 한 장도 못 읽고 저녁잠에 취해 버린다. 지난주에 120년의 역사를 가진 리프트벨리 아카데미를 다니는 한국학생의 부모로부터 카톡이 왔다. 본인의 아이가 다리 수술을 했던 곳이 재발이 된 것 같다며 학교에서 MRA를 찍어 봐야 한다는 것이다. 학교 부근의 병원에는 MRA를 찍는 기계가 없어서 나이로비로 나와야지만이 되었다. MRA를 찍을 때는 꼭 보호자가 있어야 한다며 도움을 요청하셨다. RVA 학교에서 카렌 병원까지는 약 1시이나 넘게 걸리는데 오전 10시 30분에 검사를 예약을 해 놓았다고 했다.
병원과 우리 집이 꽤 멀었기에 아침 7시 40분에 아이 둘을 학교에 드롭시키고 카페에서 한숨을 돌리고는 병원으로 향했다.
키가 큰 남학생이 의자에서 천천히 일어서면서 병원 안으로 들어서는 우리 부부에게 인사를 건넨다. 유라고 불리는 아이와의 만남은 처음은 아니다. 학교 중간방학 때 우리 집에서 3박 4일이나 4박 5일을 머문 적이 있었기에 낯이 익다. 그러나 오롯이 유와의 만남은 처음이다. 검진이 예약시간보다 늦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유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많은 친구들 속에서 있을 때는 거의 말이 없었는데 꽤나 이야기를 잘했다. MRA 실로 들어갔던 아이가 생각보다 촬영이 빨리 끝나는 바람에 12시 전에 병원을 나섰다.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학생들은 학교 밖을 나오면 최대한 늦게 들어가고 싶어 한다. 그것도 몸이 안 좋아서 병원으로 왔기에 아이에게 맛있는 점심을 사 먹이고 싶어서 우린 한국분이 운영하는 하루라는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메뉴를 선택하는 것을 힘들어하는 아이에게 고기 음식을 추천했다. 우리 아들도 이 식당에서 돼지고기 씨즐링을아주 맛있게먹은 적이 있었기 때문에 밥한 공기를 더 추가해서 주문을 했다.남편은 본인 회덮밥을 비벼서 아이에게 따로 덜어주고 나는 런치박스의 반찬을 슬그머니 밀어주었다.
아이는 스스럼없이 자신의 속마음과 가족의 이야기를 꺼냈다. 탄자니아에서 유치원을 운영하시는 아버지는 엄마보다 요리를 더 잘하시고 자신의 머리카락도 잘라주신다고 한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로 만 9살인 막내 동생과 엄마는 한국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학교에서 불편한 친구에 대해서도스스럼없이 이야기를 꺼냈다.
어린 유와의 만남을 통해서 다시 깨닫는 것은 오롯이 '너에게 만 집중해서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어른인 우리 부부와 어린 유가 가까워질 수 있어서 가슴 한쪽이 따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