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J과 Y를 현지인 식당이지만 조금은 세련된 곳에서 만났다. 이미 중국인 커플과 백인 한 명이 식사를 하고 있었던 터라 음식에 대한 기대감이 조금은 생겼다. 식당은 밖에서 언뜻 보기에는 괜찮아 보였고 J의 적극적인 추천이 있었기에 가보기로 한 것이다. 도로가에서 가까운 자리는 너무 시끄럽고 매연이 신경 쓰이다 보니 안쪽의 여러 테이블을 이동하다가 결국엔 오래된 소파 쪽에 자리를 잡았다. 식당에 들어섰을 때 선술집에 배어있는 듯한 오래된 기름과 술이 섞인 냄새 때문에 기분이 그리좋지는 않았지만 음식 맛은 생각 외로 괜찮았다.
J가 슬그머니 무엇인가를 내민다. 그녀가 인스턴트 냉면과 쫄면 그리고 깻잎 통조림까지 나와 Y를 위해서 챙겨 온 것이다. 내 맘 같아서는 쫄면을 선택하고 싶었지만 막내딸이 좋아하는 냉면을 골랐다. 나는 냉면보다 쫄면을 훨씬 선호하는 사람이지만 사랑하는 딸을 위해서는 어쩔 엄마가 되기로 한다.
우리들은 십 대청소년을 키우는 부모로서 자연스럽게 서로의 고민을 나누었다. 특별히 어떤 해답을 주고받기보다는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편안하게 이야기하는 자체가 행복이었다.
날씨가 덥다 보니 나 또한 냉면이 당겼다. 부리나케 당근과 차요태를 감자칼로 깎아서 소금과 설탕과 식초로 절였다. 오븐 위에 냄비를 올려서 물과 계란을 넣고끓였다. 냉면소스에 물을 섞어서 냉동고에 넣었다가 얼음을 넣어 본다. 두 딸은 물냉면을 먹고 나와 남편은 얼갈이김치와 차요태. 당근 절임에 초고추장을 넣고 비빔면으로 먹었다. 냉면 한 봉지로 행복한 저녁식사가 된 것이다.해외에서 사는 나에게 한국음식 선물은 뭐든 귀하고 감사하다.
** 3월 18일(월), 감사 일기 **
1. J와 Y와 함께자녀를 위한 고민을 스스럼없이 이야기할 수 있어서 감사.
2. 아이들의 학교에 하교 시간보다 일찍 도착했다. Y와 신선한 공기를 마시면서 학교 건너편에 있는 숲을 바라보며 대화를 할 수 있어서 감사.
3. 온 식구가 저녁 식사로 냉면을 맛있게 먹을 수 있어서 감사.
4. J와 Y에게 차요태 장아찌 무침과 히비스커스 주스를 나눌 수 있어서 감사.
5. H에게 선물로 받은 파운데션과 콤펙트로 화장을 꼼꼼히 하고 외출을 할 수 있어서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