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토요일부터 봄방학을 시작한 아이들은, 1주일 동안에 가야 할 곳을 계획했었다. 4월에 있는 고등학생 전체가 모이는 Prom이라는 파티에 참석하기 위해서 신발과 드레스를 사야 한다는 거다. 그러나 남편이 일요일 저녁부터 정신을 못 차릴정도록 어지럼증에 시달렸다. 귀와 머리를 검사하기 위해서 이틀이나 타운에 있는 병원을 오갔다. 두 딸은 엄마인 나하고 만 외출하는 것이 아빠에게 미안했나 보다.
"아빠, 우리 나갔다 와도 돼?"
"당연하지, 엄마랑 맛있는 것도 먹고 와."
전정신경염으로 남편은 아직 외출할 수 있는 컨디션은 아니다.
주말이면 나이로비의 싸리센터 몰에는 인도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대가족 인도인들이 즐겨찾는 곳이다 보니 이곳이 마치 인도라는 나라인가 싶을 정도다. 몰에는 극장과 볼링장 있어서 젊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좋다. 영국식 학교는 방학이고 우리 두 아이가 다니는 WNS 학교도 방학이지만 오늘은 평일이다 보니 몰 안이 한산하다.
딸들에게는자유로운 쇼핑을권유하고 나는 혼자서 Java라는 커피숍으로 향했다. 기침이 간간이 나오는 바람에 Java에서 소문난 '다와'라는 생강꿀차를 한잔 마실 참이다. 오전 10시 30분, 카페에는 브런치를 먹는 사람들과 미팅을 하는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나는 다와 한잔을 시켜놓고 막심 고리끼의 장편소설인 어머니라는 책을 꺼냈다. 오랜만에 카페에서 책을 읽는다. 주위는 시끌버끌하지만 나는 책 속으로 금방 빠져 들었다.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는 현장 속의 빠벨의 어머니가 된다. 글자를 읽을 줄 몰랐던 빠벨의 어머니는 자신의 작은 거실에서 노동자 청년들이 사회혁명을 일으키기 위해서 매일 밤마다 은밀하게 토론하는 내용을 귀동냥으로 만 들으면서 그들의 꿈을 지지한다. 어머니는 아들이 혁명 중심에 있다는 것이 무서웠지만 마음이 뜨거워지면서 오히려 그를 자랑스러워한다. 결국 어머니도 혁명에 동참한다. 젊은이들이 총검 앞에서 혁명가를 부르는 모습에선 나의온몸에소름이 돋았다. 달달한 꿀과 알싸한 생강이 섞인 뜨거운 액체 한 모금을 목안으로 꿀꺽넘긴다.
집에서 책을 읽을 때는 거의 잠들기 전에 침대에 누워서 볼 때가 많다. 은은한 스탠드 전등 아래에서 책을 읽다 보면 금방 잠에 빠져 버린다. 마지막 책장을 덮는데 까지는 시간이 한참이나 걸린다.
신기한 것은 주위는 온통 소란하지만 나 홀로 카페에 앉아 책을 읽다 보니 몰입이 너무나 잘되었다.
어느새, 딸들이 내 앞에 나타났다. 아쉬운 마음으로 책을 덮었다.
3월 27일(수), 감사일기
1. 남편이 멀미하는 것처럼 속이 울렁거리지만 약을 먹으면서 어지럼증이 나아지니 감사.
2. 두 딸과 함께 외출을 하고 집에 돌아오자 아이들은 기분이 좋은지 거실에서 아빠하고 몇 시간씩 이야기를 한다. 그 모습을 보니 감사.
3. 남편을 위해서 닭 한 마리를 사다가 대추와 생강, 마늘, 후추와 매운 고추 몇 개를 넣고 삶아서 살을 발라내고 국물에 찹쌀을 넣고 끓였다. 남편이 적은 양이지만 식사를 할 수 있어서 감사.
4. 둘째가 몰에서 구입한 샌들이 맘에 드나 보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신발을 신고 여기저기를 돌아다닌다. 기분이 좋아 보이니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