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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의 끝판

64일

by Bora

케냐에서 은행계좌를 만든 지, 한 달 만에 인터넷 뱅킹을 열었다. 은행에서 문자로 인터넷 뱅킹 신청 비번을 보내준 것을 확인하지 못하는 바람에 취소가 되어버렸다. 은행에 가서 다시 신청을 하고 문자로 새로운 비번을 기다렸지만 무소식이었다. 은행 서비스 센터에 문자와 전화로 연락을 했지만 아무런 답이 오지 않았고 결국엔 은행에 직접 가야 해야 했다.


목요일 오전 10시, DTB 은행은 한산했다. 서비스 담당 직원의 손님용 의자가 비어 있어서 냉큼 가서 앉았다. 그녀의 이름은 폴린이다. 그 옆 자리에는 나의 은행계좌를 열은 시라라는 직원이 앉아 있었다.

오늘은 일처리를 끝내고 집에 갈 계획으로 큰 맘을 먹었다. 비번을 받으면 24시간 안에 등록을 해야 한다. 안 그러면 취소가 되기 때문이다.

나는 폴린에게 미리 폰에 깔아 둔 DTB 인터넷 뱅킹 업무를 부탁했다. 그녀가 직접 3번 정도 인터넷 뱅킹의 프로세스를 시도했지만 캔슬이 되었다. 여러 번의 인터넷 접속 끝에 결국 2시간 만에 등록에 성공했다. 내가 인터넷 뱅킹 등록을 그토록 원했던 이유는 케냐 사파리콤에서 만든 엠파사라는 시스템과 연결을 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면 굳이 은행에 가지 않고도 일을 처리할 수 있는 편리함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번에 은행계좌를 열 때에 도움을 주었던 E가 또다시 큰 역할을 했다. 한국인 두 여자가 고객 서비스 센터 의자에 죽치고 앉아서 얻어낸 결과였다. 나와 E는 케냐의 일처리 시스템이 느리다는 것을 익히 잘 알고 있다. 오늘은 느리면 느린 대로 기다렸다가 끝을 보자라는 각오가 있었다. 한국인 두 여인과 케냐인 두 여인의 인내의 결과로 드디어 해낸 것이다.

폴린과 시라가 업무가 끝나자마자 E에게도 DTB 카드를 만들라고 영업을 시작한다. 케냐에서 이토록 열심히 고객을 잡기 위해서 애쓰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오히려 기분이 좋았다. 아마도 그녀들에게 수당이 떨어질 것 같다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나와 버렸지만 나는 한국인 친구들에게 싸리센터 DTB를 소개하겠노라 약속하고 안녕을 고했다.


5월 16일(목), 감사 일기

1. DTB 인터넷 뱅킹을 신청할 때 도움을 준 E와 폴린과 시라의 친절함과 인내에 감사.

2. 싸리센터의 푸드코너에서 저렴하고 맛있는 음식을 하나 발견했다. 케냐에서 외식비가 싼 편은 아니다. 쇼핑몰 안에 있는 푸드코너의 음식 가격이 한화로 10,000원이면 그나마 괜찮은 편이다. 오늘은 일본인이 운영하는 코너에서 연어덮밥을 주문했다. 연어와 투나 중에 한 가지를 선택해야 했다. 생각 외로 연어가 많이 들어 있고 맛도 짜지 않고 적당했다. 연어비빔밥 한 그릇에 케냐 돈으로 1,000실링, 한화로 10,000원이면 가성비가 좋은 편이다. 음식의 맛과 가격이 괜찮아서 감사.

3. E가 두 명의 여대생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야기를 듣는 내내 마음이 괴로웠다. 고작 21살, 22살밖에 안된 여대생들이 살아온 삶이 막장 드라마보다 더 막장이었다. 가슴이 먹먹해서 눈물이 차올랐다. 케냐의 가난한 환경에서 자란 여성들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픔이 가슴 깊이 박혀있다. 나와 E는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면서 더 깊이 케냐의 젊은이들을 가슴으로 품었다. E와 진중한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감사.

4. 아프리카대륙 한글학교교사 연수 개회식을 줌으로 가졌다.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에서 2박 3일 동안 오프라인과 온라인으로 동시에 연수가 진행된다. 사명감과 책임감으로 한글학교 봉사를 하시는 선생님들이 계셔서 감사.

5. 밤 8시, 나이로비에 비가 내린다. 시내 쪽에서 천둥 치는 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이 밤에 전기가 안 나가니 무조건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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