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 수 없다면 나아가자

by HONG

당장 막혀있는 코가 뚫린다는 사실에 너무 기뻐서 아무 생각이 없었다.

코 안에서 패킹이 무한하게 나오며 살점을 다 끌고 나오는 기분이 들었다. 소리조차 못 지르고 억억대기를 대여섯 번 정도하고 나니 교수님께서 패킹을 전부 제거해 주셨다.

패킹제거가 끝나고 아버지를 바라보니 아버지의 눈가가 촉촉해져 있어서 "울어?"라고 장난스레 물어봤는데, 내시경으로 코 안쪽에 꿰매어진 부분과 패킹을 제거하는 과정을 엄청 생생하게 보셨다며 얼떨떨하게 아파하는 나보다 더 아파하시는 모습에 어쩐지 금방 아픈 게 가라앉는 듯했다.

그래도 이 정도의 고통으로 코로 숨 쉴 수 있는 자유가 생겼다면 나름 저렴하게 지불하게 된 셈 아닐까?


이제 남은 건 코에 더 깊숙이 박혀있는 실밥과 패킹을 마저 제거하는 일과 눈썹의 실밥제거만이 남았다.

교수님께서는 퇴원하고 나면 보름정도는 절대 요양을 해야 한다며 집에 혼자 있지 말 것을 당부하셨다.

나는 퇴원하면 우리 집 고양이와 오순도순 둘이 있고 싶었는데 생각보다 부여받은 3개월의 병가시간이 아깝게만 느껴졌다.

내 고집대로만 할 수 없는 '어쩔 수 없다'라는 감각이 마음을 저릿하게 만들었다.

그래도 병실에 있으면서 깨달은 게 있다면 어쩔 수 없다는 걸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법이다.

또 어쩔 수 없는 무언가가 왔다. 내게 가장 큰 위로이자 고통의 말을 스스로에게 건넨다.

"어쩔 수 없지, 해야지." 그 말 안에 모든 감정을 집어넣는다. 나아가야 하니까.

퇴원하고 나서는 고모집에서 요양하기로 했는데, 내가 낯도 많이 가리고 살갑지 못한 성격이라 잘해주실 고모를 생각하니 도리어 걱정되고 벌써부터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괜히 스트레스가 쌓이기 시작했다.

하고 싶은 대로 하려면 최대한 나아서 아무도 걱정을 안 시키는 게 최선의 방법임을 돼 내었다.


병실에 돌아온 나는 집에 돌아가면 하고 싶은 일을 몇 가지 적어보았다.

일단 첫 번째로 집에 가서 침대에 이불을 미리 싹 펼쳐놓고, 시원한 거실 소파에 앉아서 고양이를 쓰다듬다가

베란다에서 비치는 햇빛을 좀 바라보다 시원하게 샤워를 한번 하고 싶다.

게으른 성격이라 며칠 안 씻는다고 신경 쓰지 않았는데, 일주일을 너무 넘기고 나니 씻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 한가득해졌다. 그래도 하고 싶은 일들을 적어내려가니 조금 기분이 좋아졌다.

그럼 두 번째로는 씻고 나서 방금 깔아놓은 이불 위에 잠깐 누워 방에 붙여놓은 포스터를 구경하다 컴퓨터를 켜고 하고 싶은 게임을 실컷 했으면 좋겠다. 금방 그런 날이 오겠지. 조금만 좋았던 기분이 어느샌가 부풀어올라 미소가 지어졌다.


패킹을 제거한 뒤에는 코세척을 하는 방법을 간호사 선생님께서 친절하게 알려주셨다.

코세척은 퇴원 한 뒤에도 꾸준히 매일 해줘야 한다며 신신당부하셨는데 코세척을 할 때마다 이상하게 목구멍이 따가운 느낌이 들어서 썩 좋지는 않았다.

그래도 지나가지 않는 일은 없으니까. 불행과 행복은 종이 한 장 차이랬던가.

여태껏 생각지도 못했던 퇴원 후 나에게 합법적으로 주어진 병가 3개월의 기간이 너무나 설레기 시작했다.

감정을 여기저기 티 내고 다니면 마치 천사와 악마가 대결을 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날따라 병실이 수선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어쩌면 기분 좋은 상상을 너무 많이 했던 걸까? 갑자기 좋지 않은 일들이 조금씩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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