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아름 Aug 15. 2023

사랑의 그물에 덮여...

나로 살고 싶다.

가족들에게 말하지 않고 혼자 조용히 이사를 했는데 그만 들키고 말았다. ‘뭐라고 둘러대지?’ 고민할 새도 없이 가족들은 ‘정말 잘했어!’ 하나같이 그리 말해준다.


“진즉에 옮기지 그랬어? 처음부터 왜 가서 고생을 사서 해. 혼자 이사하느라 고생 많았겠네. 너답다...!”


아쉬움 반, 포기 반 섞인 푸념 같은 반응이다. 



만들어진 나

누구 말을 들을 사람도 아니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그리고 힘들수록 더 깊이 굴을 파고 홀로 있기를 원하는 나는 어쩔 수 없나 보다. 아파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도 출장 중이라고 적당히 둘러대며 혼자 견뎠고, 감당하기 버거운 일을 겪을 때에도 웃어주며 잘 넘겨왔다. 다 지난 후에나 알리면 알렸지, 과정 중에는 절대 말하지 않는 것이 습관이 돼버렸다. 지금은 가족들도 인정하는 ‘내 맘대로 선수’다. 무엇이든 함께하자고.... 가족이란 무엇이든 함께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게 맞는데 난 사실 그러하질 못하다. 


어린 시절부터 너무 일찍 철이 들어버린 까닭인지... 부모님 앞에서도 눈물 흘려본 적이 없다. 내가 아픈 것은 괜찮은데... 내가 사랑하는 이들이 아파하는 모습은 견딜 수가 없었다. 함께 아파하고 고통을 보듬을 수 있는 게 가족인데 나는 머리로는 알면서도 절대 그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나로 인해 마음 아파할까 그것이 늘 염려되었던 나였다. 길을 걷다 눈물이 쏟아져 목이 메어도 집 앞에 도착하면 발성 연습을 수없이 했다. 들키지 않도록... 어쩌면 이런 나를 아는 가족들은 일부러 모른 척해줬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말이다. 


생각해 보면 친구들 앞에서도 눈물을 보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까맣게 타들어가는 그 뜨거은 탄식을 목으로 삼켜내며 그저 소리 없는 독백만을 외쳤으니 그들이 나의 눈물을 볼 일이 없었던 것이다. 겉으로는 밝고 쾌활해 근심걱정 없는 아이가 나였지만, 사실은 난 늘 상처투성이였다.  



차갑다는 나

이런 내가 안타깝게도 어린 시절부터 40대의 끝자락에 이른 지금에도, 가까운 이들로부터 지금까지도 듣는 소리가 있다. 뼈아픈 말이다.  


"너는 정말 차가워. 얼음같이 냉정해...."


"자식인데도 형제인데도 다가서기가 너무 어려워! 우리가 알아온 세월이 얼마인데 넌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 있어?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차니? “ 


”너도 감정이라는 게 있어? 너는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거야. 넌 분명히 얼음 속에서 태어났을 거야!... “


참, 표현은 안하지만...'참 악담같다...' 

사실 난 그렇게 냉정하거나 차가운 사람이 전혀 아닌데 그들은 나를 꿰뚫어 보는 눈이 없는 것 같다. 아니면 내가 감정을 내보이지 않는데 프로여서 인지도 모른다. 그런 중에도 그런 철통 가면 너머로 나를 뚫어보는 기인들이 몇 있다. 이들은 세월 묵은 나의 지기는 아니다.




사랑의 그물을 덮어...

나의 이사 소식을 알게 된 그 기인들 중 한 분에게서 연락이 왔다. 


”이사하셨군요! 인생이 아름다운 건, 박사님 영혼이 아름다워 가는 데마다 풍경을 아름답게 만드시는 거죠! 남자로 태어났으면 세상을 바꾸기 위해 유혈혁명이라도 저질렀을 팔자인데, 그 대신 이르는 곳마다 크고 널찍한 사랑의 그물을 씌우는 것입니다. 사랑의 그물에 갇힌 운 좋은 사람들이 그물코 하나씩을 붙잡고, 싹을 틔우듯 사랑의 그물을 하나씩 뽑아내서 세상을 덮고, 그런 아름다운 일이 반복되어서 어느새 세상 전체가 사랑의 그물 안에 놓이게 된다면 참 좋을 것 같아요 “

어렵기도 하고 아름답기도 한 말이다. ‘사랑의 그물’이라니.... 그물이라는 것이 무언가를 잡아가두는 용도로 쓰이는 물건인데 말이다. 사랑의 그물을 던지면 무엇을 건질 수 있을까? 사랑이겠지... 


자유를 속박하고, 경제적 이득을 취하기 위한 그물이 아닌 사랑의 그물이라면, 그물에 덮이는 것이 축복일 것이다. 단, 진정한 사랑의 그물이라면 말이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사랑은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교만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고린도전서 13장 중에서-



인생의 그물

인생들은 끝없이 무언가에 매여 산다. 젊은 날엔 진로와 생계를 위해 죽도록 일에 매이고, 잠깐의 사랑할 시간도 부족해 가정을 이루고 나면 자녀들에게 나이 육십이 다 되도록 매인다. 그러다 자녀가 성장해 가정을 이룰 무렵이 되면, 낡고 색 바랜 달팽이 껍데기를 이고 다니는 낯선 노인, 바로 자신을 마주한다. 그것이 삶이라고들 말하지만, 비록 남루한 달팽이 껍데기 속의 인생이라도 빛나는 영혼과 뜨거운 가슴은 살아있는 법이다. 그러니 이왕에 매여 살 인생이라면 사랑에 매여 사는 게 맞다. 적어도....


나와 가정, 이웃, 생면부지의 인생들에게까지 베풀어줄 수 있는 뜨겁고 진실한 사랑, 그리고 하늘을 감동시킬 수 있는 그런 사랑말이다. 


생각지도 못할 집으로 이사한 덕택에 생면부지의 어르신들과 나는 뜻하지 않은 인연을 맺게 되었다.  가족들 말대로라면 난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나는 차가운 사람이니 이들과 인연을 갖는다는 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일 것이다. 


그래서 가끔은 외롭다. 물론 내가 자초한 쓸쓸함과 고독이지만 말이다. 그 무거웠던 가면을 이제는 벗어보려 한다. 힘들면 힘들다고 말하고, 슬프면 슬프다고 표현할 수 있는 나로 말이다. 그는 언제나 날 보고 그런 이야길 했다.



그저 나로 살고 싶다

박사님은 민달팽이 같아요. 다른 달팽이들은 집을 이고 다니는데... 그러니 아픈 거예요... “

우리가 알아 온 세월이 7년이다. 자주 만나지는 못해도 글로 통화로 담론을 이어온 그는 내 영혼의 친구다. 

민달팽이, 집이 없다(출처:unsplash)


그가 나를 민달팽이라고 할 때마다 사실 마음에 상처가 되었다. 내가 너무 속을 다 보이며 사는 것 같아서, 그리고 나를 보호해 줄 장치 하나 없이 그렇게 무방비 상태로 온갖 아픔을 다 느끼는 것을 들킨 것만 같아서 말이다.  그런 민달팽이라도 감정을 잘 통제하며 얼음공주로 평생 살아온 나인데 말이다. 


톨스토이의 <죄와 벌>,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수 백번 읽으며 인생이 왜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는 끝없이 자문해 왔고 내게도 끝없이 질문을 던졌던 그다. '땅을 깊이 파다 젖은 흙이 나오면 희망이 보이지 않냐며, 결국 물을 길을 수 있지 않냐'며 그는 자기 성찰을 평생 해 온, 수행자의 삶을 살아왔다.


그런 그가 언젠가 내게 뜬금없이 사과를 한 적이 있다.


”박사님, 죄송해요. 제가 민달팽이라고 해서 마음이 상하셨죠? 어느 날인가 생각해 보니 일반 달팽이들은 약하니 집을 이고 다니지만, 민달팽이는 강하니까 집이 필요 없는 거예요. 박사님은 강한 분이에요. “


민달팽이든 일반 달팽이든... 내가 나로 살고 싶다는 것이 중하다.

달팽이, 늘 집을 이고 다닌다(출처:unsplash)

가족들도 수 십 년 지기들도 볼 수 없는 내 모습을 들춘 지인들. 참 놀랍다. 

이들은 나를 아는 사람들이다. 그렇다고 내가 사는 게 버겁고 고단할 때 난 이들을 찾지 못한다. 익숙하지 않아서다. 평생 그리 살았는데 그게 쉽게 되겠는가? 다만, 적어도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줄 수는 있어서... 무거운 가면을 쓰고 있지 않아도 돼서... 참 다행이다. 


생각해 보니 내 모습을 아는 사람들이 몇 있다는 것도, 그들 앞에 가면을 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도 참 감사한 일이다. 


내 본연의 모습으로 살고 싶다. 나이고 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