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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최 Aug 14. 2022

고도의 왈츠 #2/6

#습작/단편소설

작업실에 엘리엇 스미스의 노래가 흘렀다. 고도는 매일 한 음악가의 노래를 틀어놓고 작업했다. 난 지난주와 같은 차림에 같은 자세로 허공을 주시했다. 남은 3주가 까마득했다. 그는 왜 일주일이면 될 일을 5주에 걸쳐 그림을 그릴까.

고도의 손엔 연필 대신 붓과 팔레트가 들려 있었다.

“살면서 절망한 적 있어요?”

고도의 질문에 난 질문의 의도를 생각해 보고 답했다.

“절망적인 표정을 지으면 돼요?”

“들려 달라고요. 떠올리게.”

“작가님 걸로 떠올리죠.”

“난 절망한 적이 없어요.”

없기는. 지난번 나이프로 내 턱을 치켜 올리던 모습은 절망 그 자체였는데.

“아닐 텐데.”

“우무리 씨가 날 아십니까?”

“모릅니다.”

그는 자신의 절망을 인식 못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직 거기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생각하겠지. 그때 난 절망 속에 있었구나.

내 이름은 우무리다. 두세 살 때 우물에 빠져 죽을 뻔했던 사건으로 우무리야, 우무리야 하고 불리던 게 호적까지 올라갔다고 한다. 들어 보면 별것도 아닌데 엄마는 무덤까지 가져가려고 꿋꿋이 함구하고 있다. 난 그 이야길 열여섯 살 때 외할머니에게 들었다. 난 그저 유아기를 지독한 촌에서 보냈구나 생각하고 넘어갔다. 엄마가 날 우물에 빠뜨려 죽이려던 거라도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복병은 성인이 된 어느 날 문득 들이닥쳤다. 엄마는 어쩌면 날 끝내 없애지 못한 걸 후회하는 게 아닐까. 죄의식은 내가 아니라 당신 인생을 향해 있는 게 아닐까. 그 생각이 들자 침대 밑이나 장롱 틈 같은 곳으로 사라졌던 조각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제자리에 정렬했다. 순식간에 완성된 퍼즐 그림이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래서였구나.

모든 진실은 모든 곳에 있다. 간단한 발상의 전복이 개중 어떤 것들을 낚아챌 뿐이다.

고도가 물었다.

“무슨 생각해요?”

“저녁 뭐 먹을지.”

“아닐 텐데.”

난 ‘날 아십니까?’라고 응수할 뻔했으나 말을 삼켰다. 고도는 피식 웃더니 다시 물었다.

“뭐 먹을 건데요?”

“아직 못 정했어요.”

“먹고 갈래요?”

“여기서요?”

“네.”

“아니요. 집에 가서 먹을게요.”

“사줄게요. 집밥 같은 거 원하면 어떻게 차려보고.”

“왜요?”

“바라는 게 있어서요.”

가슴이 절컥 잠겼다.

“바라는 게 뭔데요?”

고도는 대답 없이 그림만 그렸다. 머릿속으로 옷을 입고 가방을 챙기고 나가려고 현관 앞에 섰을 때쯤 그가 말했다.

“그만두지 않는 거요.”

“… 아.”

“난 나를 알거든요.”

그래, 알긴 아는구나. 오해할 만한 문장을 사용해 극적인 반전 효과를 주었구나. 요망한 것.

난 불쌍한 그를 달래줄 만한 이야기를 들려주기로 했다.

“내 이름이 왜 우무리인 줄 알아요?”

고도는 다시금 대답이 없다가 질문이 씹힌 걸로 결론나기 직전에 대답했다.

“어렸을 때 우물에 빠져 죽을 뻔했나.”

그는 별 생각 없이 정답을 맞혔다. 이게 이렇게 쉬운 문제였나. 고도는 설렁설렁 말을 이어갔다.

“왜 우물에 빠졌을까. 어머니가 우물가에서 노는 아이를 모른 척 놔둔 거지. 어머니는 임신하고 남자에게 버림받아서 혼자 아등바등 딸을 키우고 있었거든. 정말 엄마는 너무나도 힘들었던 거죠.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자기 새끼를, 죽어도 어쩔 수 없네 하고 놔 버릴 정도로.”

말문이 막혔다. 내 출생과 이름에 얽힌 사연이 우무리란 이름만 들어도 줄줄 뽑아 낼 만큼 상투적인 스토리였구나. 고도는 가볍게 산책하듯 이어서 말했다.

“다른 버전으로 해 볼까요? 우무리 씨는 어느 날….”

“맞아요, 그거.”

“뭐가요?”

“잘 때려 맞히네요. 예술가의 촉인가.”

“그래요?”

“한 번에 답을 맞혀 버리네요.”

내 말에 고도는 손을 멈추고 날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같잖다는 듯 피식 비웃었다. 내가 물었다.

“왜요?”

“한 번만 말할게요.”

고도는 다시 변덕스런 무뢰한 모드로 돌아와 말했다.

“내가 허튼소리 지껄여도 대충 둘러대진 마요. 일일이 성의 있게 응해줄 필요도 없고 말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되는데, 아무렇게나 거짓말로 눙치고 넘어가지 말라고. 내가 주절대는 게 귀찮으면 그냥 주둥아리 닥치고 있으라고 하면 돼요. 솔직하게. 난 적어도 누구한테도 거짓말은 안 하니까. 심지어 당신한테도.”

“…….”

“알겠습니까?”

밀물이 들어왔다 빠져나간 느낌이었다. 난 모욕감과 억한 심정과 영문을 알 수 없는 묘한 감동을 동시에 느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한 차례 전율이 흐르고 그것은 다시 한 번 발끝에서 머리끝으로 올라왔다. 왜인지 심장 박동이 빨라져 살갗이 요동쳤다. 이 떨림이 고도에게 보일까. 그는 이걸 뭐라고 해석할까.

내가 대답했다.

“닥치고 그려요, 그럼.”

고도는 군말 없이 다시 붓을 들고 예술가의 작업에 매진했다. 끝날 때까지 우린 아무 대화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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