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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최 Aug 16. 2022

고도의 왈츠 #4/6

#습작/단편소설

초인종을 누르자 도어락이 열렸다. 손잡이를 돌려 작업실에 들어서자 벽에 쓴 숫자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오늘의 선곡은 시규어 로스였다.

고도는 내가 들어와 코트를 벗고 옷걸이에 거는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다 주방으로 갔다. 인사 같은 걸 할 줄 모르는 인간이라 나도 인사하는 데 에너지를 쓸 필요가 없다는 점은 편리했다. 난 가방을 마저 옷걸이에 걸고 선반 아래 있는 체중계를 발로 꺼내 올라갔다. 벽에 쓰인 숫자와 일치했다.

“확인하시죠.”

고도는 커피를 내리며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다.

“저 숫자랑 같아요?”

“1킬로 많아요. 옷 때문에.”

“좋아요.”

“괜찮아요?”

“네.”

고도는 끝까지 쳐다보지 않고 대답했다. 난 탈의실로 들어갔다.

옷을 벗고 나와 벤치에 앉았다. 고도는 뒤로 와서 깁스코르셋을 입혀 주었다. 옆자리에 방금 내린 커피가 놓여있었다. 난 이것을 마실까 모른 척 놔둘까 생각하다 물었다.

“내 거예요?”

“마셔요.”

“마시면 화장실 가고 싶어질 텐데.”

“가고 싶으면 가고.”

“화장실 가려면 깁스 풀어야 해요.”

“그럼 풀고.”

몸에 기구가 다 채워지고 고도는 캔버스로 돌아갔다. 그가 물었다.

“마실 거예요?”

“아뇨. 됐어요.”

“마실 거면 기다리고.”

“그래요, 그럼.”

난 커피 잔을 들었다.

기다리는 동안 고도는 캔버스를 보며 멍하니 시간을 때웠다. 나이프로 물감을 퍼서 팔레트에 탁탁 치며 떨어뜨렸다. 중간중간 내가 아직도 커피를 마시고 있는지 힐끔거렸다.

너도 예의를 지키며 살던 시절이 있겠지. 예의를 버린 계기도 있을 거고. 오랫동안 안 하던 짓을 하니 온몸이 부대끼지. 예의를 갖추고 산다는 건 깁스를 평생 하고 사는 것처럼 겉과 속이 부대끼는 일이란다, 꼬맹아.

“시작해요.”

나는 반쯤 남은 커피 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우물에 빠진 게 몇 살 때였어요?”

말없이 그림만 그리던 고도가 물었다. 난 입만 움직여 대답했다.

“세 살이었나.”

“안에서 무슨 생각했어요?”

“엄마 기다렸어요.”

“기다리면서.”

“무서워했죠.”

“뭐를?”

“누가 들여다볼까 봐.”

“누가요?”

“누구든. 들여다만 보고 그냥 갈 것 같아서요.”

“안 구해 주고?”

“네.”

“누가 그랬어요?”

“아뇨.”

“그런데 왜 그렇게 생각했어요?”

“글쎄요. 실수로 태어난 아이란 걸 내가 알고 있었나 보죠.”

“우물에 혼자서 빠진 거 맞아요?”

“네.”

“엄마가 빠뜨린 거 아니고?”

“아닐걸요. 그렇게 적극적으로는.”

“아니면 누굴 시켜서.”

“그건 더 적극적이죠.”

“그런가.”

“그랬다 한들 이젠 뭐.”

“뭐 했어요, 그 안에서?”

“어릴 때라 기억 안 나요.”

“무서웠던 건 기억하잖아요.”

“그건 그 안에 있던 내내 하던 생각이니까 각인이 된 거고.”

“올라오려고 시도해 봤어요?”

“자꾸 말하니까 자세가 흐트러지는데요.”

“괜찮아요.”

무응답이나 ‘알겠어요’가 올 줄 알았는데 ‘괜찮아요’가 왔다. 자세 핑계로 입을 다물려던 나는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뭘 하긴 했겠죠. 그런데 기저귀 찬 세 살짜리가 뭘 얼마나 했겠어요.”

“안에 물도 있었어요?”

“네. 얕게 있었어요.”

“얼마나?”

“발에 찰박찰박한 정도.”

“벌레도 있었고?”

“네.”

“어떤 벌레요?”

“다리가 많은 거. 다리가 없는 거.”

“울었어요?”

난 눈을 위로 뜨며 기억을 더듬었다. 울었던가. 내가 낸 울음소리를 들은 기억은 없었다.

“기억이 안 나네요.”

“울었는지 기억 안 나요?”

“네.”

난 까악까악 까마귀 우는 소리를 들은 기억이 났다.

“까마귀가 한 마리 있었어요.”

“까마귀요?”

“밤에 우물 위로 달이 떠서 잠깐 환했거든요. 우물 입구에 까마귀가 있었어요. 앉아서 울기도 하고. 까마귀가 한참 있다 갔어요.”

“한 마리였어요?”

“네. 한 마리.”

“무서웠어요?”

“아뇨. 까마귀는 좋았어요. 까마귀가 갈까 봐 무서웠죠.”

고도는 더 이상 질문하지 않고 그림에 집중했다. 까마귀가 등장하자 흥미가 떨어졌나. 나도 어깨를 바로 세우고 모델의 본업에 집중했다.


고도는 벽시계를 올려다보곤 붓을 내려놓았다.

“여기까지 하죠.”

그는 내 뒤로 와서 깁스를 풀어 주며 말했다.

“수고했어요.”

처음으로 건네는 인사치레에 놀랐지만 난 당황한 티를 내지 않고 대답했다.

“작가님도요.”

기구가 몸에서 떨어져 나왔다. 난 탈의실에서 옷을 입고 나와 체중계부터 찾아갔다. 올라가서 숫자를 보는데 고도가 다가와서 코트를 빼서 입혀주었다.

“이거 때문에 다이어트하는 거예요?”

“그렇게 열심히 하진 않아요.”

그는 가방을 챙겨 주며 말했다.

“꿈을 꿨는데요.”

난 가방을 메고 신발을 신으며 듣고 있다는 표시로 고도를 올려다봤다. 그가 계속 말했다.

“달이 환하게 뜬 밤에 날아가고 있었는데 땅에 반짝이는 점이 보였어요. 내려와 보니 우물이었어요.”

난 웃음을 터트렸다.

“그 안에 여자아이가 있었어요?”

“네.”

어디 한번 들어 보지. 난 팔짱을 끼고 신발장에 기대섰다.

“우물이 왜 반짝거려요?”

고도는 나를 따라 선반에 팔을 걸치고 기대섰다.

“처음엔 물에 달빛이 비쳐서 그런 줄 알았거든요. 우물물에.”

“네.”

“그게 아니라 여자아이가 올려다보는 얼굴이었어요. 하얀 얼굴에 달빛이 비쳐서 빛이 났던 거예요.”

“당신이 까마귀였어요?”

고도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구해 주고 싶었어요. 그런데 까마귀 한 마리 힘으론 안 되잖아요.”

“그렇죠.”

“그래서 동네 집집마다 가서 울어 댔어요. 우물 안에 아이가 있다고.”

“…….”

“밤새도록 동네를 돌며 울었는데 아무도 안 일어났어요.”

난 고도의 눈을 보며 농담과 진담의 비율을 헤아렸다. 고도는 시선을 피하지 않고 오히려 내 시선을 잡아 묶으며 뚫어 보았다. 생각해 보면 그는 늘 상대를 꿰뚫어 보듯 눈을 맞췄다.

“그래서요?”

“날이 밝고 곧 해가 뜰 것 같더라고요. 다시 우물로 돌아가려고 했는데 우물을 못 찾았어요.”

“왜요?”

“달빛이 없어서. 반짝거리지가 않아서.”

어쩐지 일이 끝난 후에도 이 자를 계속 볼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고도가 말했다.

“미안해요.”

난 먹먹한 기분에 젖어들며 동시에 쉽게 용서하고 싶어지는 내 자신이 허탈했다. 이 자의 사과 한마디가 이리 고귀했던가. 무뢰한에게 길들여져서 객관성을 잃었구나.

난 시선을 떨어뜨렸다. 눈이 갈 곳 없이 방황했다. 고도는 미동도 없이 다시 말했다.

“진심이에요. 미안해요.”

머릿속에 엉키던 생각들이 멈췄다. 그는 이 이야기를 언제 만들었을까. 내게 사과할 빌미를 찾기 위해 우물 이야기를 물어봤을까. 말없이 그림만 그리는 동안 그것을 미안하다로 끝나는 까마귀 우화로 각색했을까.

어쨌거나 이건 그가 최선을 다해 하는 사과였다. 난 거울을 보며 코트를 털었다.

“알겠어요. 고마워요.”

“괜찮아요?”

“네.”

“마음 좀 풀렸냐고요.”

“그건 하루 지나 봐야 알 것 같아요.”

“밥 안 먹고 갈래요?”

“네.”

“다음 주에 봐요.”

고도는 두말없이 손을 내저으며 작업실 안으로 들어갔다. 난 산뜻한 발걸음으로 작업실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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