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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챗쏭 Jun 02. 2019

내 딸아이의 '선고유예'를 원합니다.

2층 빌라의 윗집과 아랫집 사이


피고인은 세명이었다.

아빠, 엄마, 이제 막 스무 살을 넘긴 딸.


그들의 죄는 주거침입죄. 그리고 과실치상.


2층 빌라에 윗집과 아랫집 사이에서 일어난 일이다.

2층 윗집에는 할아버지, 할머니 내외가 살고 있었고, 1층에는 아이가 셋인 부부.

다섯 식구와 그들의 반려견, 강아지가 한 마리 같이 살고 있었다.


어느 날, 딸아이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아빠, 엄마, OO이가, OO이 코에서 피가 나."


마당으로 쫓아나가 보니, 키우는 강아지의 코에서 날카롭게 베인 자국과 함께 피가 흐르고 있었다.


"윗집 할아버지인가 봐."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딸아이는 윗집으로 쫓아 올라갔다.


윗집과 아랫집은 마음의 사이가 멀었다.

다섯 식구가 북적이고 강아지를 키우는 아랫집을 윗집 할아버지는 탐탁지 않아했다.

시끄럽다고, 강아지가 짖는다고 윗집에서는 삿대질을 퍼붓고는 했다. 평소에 아랫집 강아지만 보면, '저 놈의 강아지 내가 언제 없애 버린다'라며 악다구니를 하는 일도 종종 있었다.

날카롭게 코를 베인 강아지를 보고, 아랫집 딸아이는 따져볼 것도 없이 윗집으로 향했다.


할아버지는 과도를 들고 밤을 깎고 있는 중이었다. 이날 밤 할아버지의 집에는 제사가 있다고 했다.

딸아이는 다짜고짜 따져 물었다.


"할아버지가 그랬죠? 할아버지가 이 칼로 우리 OO이 그렇게 한 거예요?"


딸아이는 손에 칼을 들고 있었던 할아버지에게서 칼을 빼앗으려고 손을 뻗쳤다.


"이거 왜 이래?"


다툼이 오가고, 엄마, 아빠가 윗집으로 따라왔다.


사진출처(표지사진 포함)_Undplash_@don-agnello


윗집은 경찰에 신고를 했고,

위아래 집의 싸움은 간단한 일로 끝나지 않았다.


그런데, 일이 이상하게 벌어졌다.


윗집이 경찰에 신고한 내용은 아랫집에서 무단으로 침입했다는 '주거침입죄'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경찰에서 아랫집을 불러 조사하는 내용에는 아랫집 딸이 윗집 할아버지의 손에 들고 있던 칼을 빼앗는 과정에서 '상해'를 입혔다는 것이 있었다.

'주거침입죄'와는 결을 달리하는 죄목이었다.

할아버지의 주장은 이랬다.


나는 아랫집 강아지가 왜 피를 흘렸는지 모른다.

갑자기 뛰쳐 들어와서는 강아지의 코에서 피가 난다며 내게 따졌다.

나는 제사를 준비하기 위해 과도로 밤을 깎고 있었을 뿐이다.

내가 그랬다고 다짜고짜 내 손에서 칼을 빼앗더니,


"할아버지도 당해 보라며, 내 손을 칼로 찔렀다."


할아버지의 손을 아랫집 딸아이가 칼로 찔렀다는 주장은 경찰의 조사와 검찰의 기소 과정에서 '칼을 빼앗기 위해 옥신각신하다가 베였다'로 바뀌었다. 그래도 과실치상의 죄는 남았다.


딸아이는 주거침입죄, 과실치상죄가 덧붙어 기소되었다.


사진출처_Undplash_@terrah-holly





1심에서 엄마, 아빠는 주거침입죄로 벌금 50만 원이 선고되었고, 딸아이에게는 주거침입죄, 과실치상죄로 벌금 1백만 원이 선고되었다.


항소심 재판이 시작되고, 무죄를 주장하는 사건이 아니어서 재판은 빠르게 진행됐다.


피고인 각자에게 의견을 묻는 차례였다.

엄마가 피고인석의 마이크 앞에 섰다.


저희 부부는 아이들을 데리고 미국에서 오랫동안 살았습니다.

둘 다 대학을 나왔지만, 사는 게 여의치 않아 애들 아빠는 미국에서 세탁소를 했어요. 저는 식당에서 설거지를 했고요. 나름 성실하게 살았습니다. 아이들이 한국에서 자리 잡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충분히 돈을 번 것도 아닌데도 돌아왔습니다. 작은 빌라지만 다섯 식구 행복했습니다.


아이들은 늘 마당이 있는 집을 원했어요. 저희는 아파트가 편했지만 그럴 수 없었습니다.

성실하게 학교생활을 하는 아이들이 늘 고마웠습니다.

여기 옆에 서 있는 아이는 큰딸아이입니다. 미국에서도 밤늦게까지 일하는 엄마, 아빠 대신에 동생들을 챙겨가며 열심히 공부한 아이예요.

한국에 돌아와서도 공부를 잘했고요. 다행히도 이번에 좋은 대학에 합격했어요.

잘 뒷바라지 못한 엄마, 아빠가 미안하게도 좋은 학교에 갔어요.


판사님, 엄마, 아빠인 저희의 잘못은 달게 받겠습니다.

변호사님의 조언으로 셋 모두 항소했지만, 법이 허용한다면, 엄마, 아빠가 모두 책임을 지면 안될까요.

제가 법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선고유예'라는 것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저희의 잘잘못은 따지지 않겠습니다. 다만, 이제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딸아이만큼은 '선고유예'로 낮춰주시면 안 될까요. 벌금형을 안은 성인이 되게 할 수는 없습니다. 부탁입니다. 이렇게 부탁합니다.



엄마는...

피고인석을 나와 법정의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누구를 향해 빌고 있는지 조차 모를 손바닥을 마주하고서.


법대의 아래에서 고개를 숙이면 누구와도 눈을 마주하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분노를 느껴 눈을 부릅뜨더라도 고개만 숙이면 된다는 것도 알았다.

하지만, 나의 등이 떨려오는 것은 숨길 수 없었다. 엄마의 마음.

부모의 마음이란 게 그랬다.


엄마의 말이 끝나고도 재판장의 마이크는 바로 켜지지 않았다.

법대를 올려다보니 재판장은 우배석 판사와 귀엣말을 나누고 있었다.

재판장이 마이크를 당겼다.


더 제출할 증거나 자료는 없지요?

최후진술을 마치고 재판을 마치겠습니다.

선고는 4주 후에 이 법정에서 하겠습니다.




법정에서의 양비론이 있다. 쌍방폭행과 같은 사건이다.

서로의 피해가 있을 때 가해의 선후나 피해의 많고 적음을 따지기보다 각자의 피해를 형량으로 선고하는 경우가 그랬다. 수사에서부터 시작되는 쌍방의 책임은 법정에서도 이어졌다. 시시비비의 세밀한 형량을 양정 하기보다는 서로의 잘못을 퉁치는 경우가 있었다.


형사재판에서 '법의 정의'가 비난 가능성이라는 부분을 날카롭게 파고들고 주장을 따져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희미하게 드러나는 선악의 구분. 선악에까지는 이르지 않는다 하더라도 미세하게 보이는 '차이'.

형사재판의 판결이 정의롭다고 생각되는 경우는 그 미세한 차이를 발견해내고 논리적인 법의 언어로 이것을 명쾌하게 짚어낼 때가 그랬다.



선고기일에는 늘 긴장감이 흘렀다.


재판장의 마이크를 타고 흐르는 판결문의 주문 낭독은 소리를 듣고서도 머리로 이해하기까지 가끔은 시간이 걸렸다.


16노 0000호 사건 선고하겠습니다.

피고인 ooo, ooo, ooo 나오셨나요?

사는 곳과 주민등록번호 한번 말씀해보세요.


그럼 선고하겠습니다.


엄마가 바라는 '선고유예'는 아니었다.




그러나,


피고인 OOO, OOO 형의 선고를 유예한다.

피고인 OOO은 무죄.


재판장은 피고인들이 키우던 강아지의 코에 피가 나 흐르는 상황에서 평소에 사이가 좋지 않던 윗집을 의심하여 이를 따지러 올라간 것은 잘못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윗집의 할머니가 문을 열어 주었고, 할아버지와 옥신각신하여 다툰 사실은 인정되지만, 할아버지의 손에 상처가 난 것은 의심스럽다고 했다.


그 미세한 차이를 발견한 재판이었다.










이 글은 누구나 발급받을 수 있는 '법원의 판결문 인터넷 제공 서비스'를 통하여 발급받은, 비실명화 처리된 하급심 판결문을 바탕으로 재구성하여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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