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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케맨 Jun 27. 2024

입덧이 없을 수도 있나요?

9주 차

  아무래도 아내는 입덧이 없는 것 같다. 우리 아이는 배 속에서부터 효자 노릇을 하다니 아주 기특하다. 입덧이 없어서 생기는 문제도 있다. 아내는 계속 아이가 잘 있는지 모르겠다며 걱정한다. 임신 초기 아직 눈에 띄는 신체적 변화가 없어서 그런지 입덧이 아이가 건강하게 잘 있다는 신호쯤으로 생각한 것 같다. 너무 조용하니까 걱정되는 느낌이다. 그런데 찾아보니까 입덧이 없는 사람도 많았다. 그동안 임산부에 대한 어떤 프로토 타입을 나도 모르게 설정해놨나 보다. 미디어의 폐해일까. 무관심했던 과거의 내가 만든 모습이다. 아무튼 덕분에 이것저것 알게 됐다. 입덧, 먹덧, 양치덧 갖가지 덧이 있었다. 공복일 때 속이 울렁거린다는 것을 보니 아내는 먹덧인 것 같다.


  태아보험을 가입했다. 내 보험은 자세히 알지도 못하고(아직 직접 가입해 본 적이 없다.) 약관이나 항목도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이번에 처음으로 보험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본 것 같다. 왠지 어른이 된 기분이다. 태아보험은 추천해 주는 상품이나 구성이 정해져 있는데, 문제는 읽다 보면 이것도 필요할 것 같고 저것도 필요할 것 같다는 거다. 그 적정선을 유지하는 게 정말 힘들었다. 수천 년의 역사를 가진 보험은 놀랍다. '만약에', '혹시'라는 단어로 수익을 창출하니까 말이다.  


  아기 침대를 설치했다. 꽤 커버린 두 조카들이 이층 침대를 가지면서 안 쓰게 된 아기침대를 누나가 필요하냐고 물어봤다. 냉큼 가져가겠다고 했다. 직접 분해해서 운송 및 설치까지 해준 매형에게 감사하다. 아내의 언니로부터 신생아 때 쓰는 아기용품들이나 옷들을 잔뜩 받았다. 주변에서 또래 아기들을 키우다 보니 도움을 많이 받는다. 온 세상이 우리 아이를 함께 키워주고 있다. 이것저것 쌓아 두던 빈방을 치우고 침대와 아기용품들을 놔두니까 뭔가 집에 더 온기가 가득해진 기분이다.


  젤리곰을 봤다. 아직은 손가락 한마디 정도 되는 크기인데도, 사람 모습을 갖춰가는 게 너무 신기하다. 의사 선생님이 이제는 3~4주 뒤에 1차 기형아 검사를 할 때 보자고 하셨다. 1주일도 이렇게 긴데, 어떻게 그 시간을 기다릴지 벌써 걱정이다. 아내보고 건강한 산모라고 했다. 그래서 아기도 건강하게 잘 크고 있다고 한다. 만성 운동부족인 아내를 걱정하는 건 나뿐인가 보다. 그래도 전문가에게 그런 이야길 들으니 안심이 되고 힘이 난다.


아내에게

홍조를 띤 당신, 나를 보고 설레나 했는데, 사실 그건 호르몬의 영향이래요. 민망하네요.

임신 사실을 알게 된 후, 처음 한 결심이 "제발 10개월 동안은 당신을 화나게 하지 말아야겠다."였는데, 벌써 실패한 것 같네요. 미안합니다.

항상 누워있는 당신이 걱정됐는데, 알고 보니 매일매일 몸 안에서는 야근 중이었네요. 미안합니다.

주변에서 이때 먹고 싶은 거 사고 싶은 거 남편에게 막 시키라고 하는데, 자기는 남편 고생시키기 싫어서 그런 말 하기 싫다고 했죠. 속이 깊은 당신을 만나서 참 내가 작은 사람이구나 매번 느낍니다. 미안합니다.

요즘 미안하다는 말만 달고 사네요. 우리 아이가 들으니까 이제 항상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할게요. 지금 안 시킨 거는 평생 할부로 나눠서 시켜주세요. ^^



아이에게

안녕? 매일매일 야근하느라 고생이 많지? 새로 설치한 아기 침대에 너를 눕히는 상상을 해봤어. 아빠 품에서도 편히 잠들 수 있게, 운동 열심히 할게. 엄마랑 사이좋게 잘 지내고, 이제 팔과 다리가 생긴다는데 엄마처럼 막 쿵쿵 차는 습관이 있지는 않을까 몰라. 그러면 엄마가 고생할 텐데... 이런 걸 거울치료라고 하지 아마. 심장소리가 우렁차서 다 같이 웃었어. 아프지 말고 먹고 싶은 거 있으면 엄마한테 말하렴.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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