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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메뉴판이 모두를 살린다

by 일로



Menu 13. 좋은 메뉴판이 모두를 살린다


나는 순수 인문학을 전공했다. 기술에 관해서는 문외한이다. 이과적 지식은 거의 백지에 가깝다. 저기압과 고기압, 산소의 원소기호, 하드디스크와 SSD의 차이 같은 기본적인 얘기도 따라가기 벅차다.


근데 아내는 완벽한 이과적 인간이다(대체 어떻게 만난 걸까 지금도 신기하다). 실제로 문학과 인문학보다 과학에 관심이 많다. 직업은 웹 디자이너. 다룰 줄 아는 컴퓨터 언어도 여러가지다. 특히 산업 디자인에 관해서 일가견이 있다. 이따금 아내와 대화하면 과학적 지식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 화제가 디자인으로 마무리될 때가 많다(내가 인문학 이슈로 운을 띄우지만 흐름은 늘 이렇게 흘러간다). 며칠 전이 그런 날이었다. 그날은 내게 유니버설 디자인의 개념에 대해 설명해 줬다.

그녀는 유니버설 디자인이 현대 산업디자인의 시작이자 끝이라 했다. 건축가인 로널드 메이스 노스캐롤라이나 대학 교수가 창안한 개념이다. 모든 사람, 즉 나이, 성별, 지적 수준과 관계없이 누구나 쉽게 접근하고 사용할 수 있도록 제품, 건축물, 환경, 프로그램 등을 설계하는 방식을 의미한단다. 거기까지 설명을 들으니 떠오르는 바가 있어 물었다. 문과적으로다가.


“그러니까, 존 스튜어트 밀의 공리주의 같은 건가? 최대 다수의 최대 이익을 위한?”

“아니지, 다수가 아니라 모두를 위해야 하는 거지.”


허를 찔렀다. 문과적으로다가. 다수가 아닌 모두를 위한다니. 말이 쉽지, 한 사람의 백 걸음 보다 백 사람의 한 걸음을 추구한다니. 현실적으로 누군가의 양보나 희생 없이는 불가능하지 않나? 이런 딜레마를 효율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공리주의 철학이 등장한 게 아닌가? 근데 모두를 위한 산업 철학이 존재한다니. 아내는 디자인의 세계에서는 보편성이야말로 사회적 생산성의 증가를 가장 확실히 끌어내는 수단이라고 덧붙였다. 공원, 경기장, 지하철, 공항 등 국가공공시설은 모두가 쉽게 접근하고 이용할 수 있어야 하는데, 보편성을 따르지 않은 디자인을 채택하면 그만큼 혼잡비용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유니버설 디자인이 불특정 다수의 편의를 지향한다면, 이는 식당에서도 필요한 가치일 터. 나는 식당에서 유니버설 디자인이 필요한 분야가 어딘지 바로 떠올렸다. 메뉴판이다. 식당은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성별, 인종, 나이, 직업, 외모와 상관 없이 모든 이들을 손님으로 맞이할 수 있어야 한다. 이들 중 누구도 불편함을 겪지 않도록 하려면 가게에 관한 간략하고 압축적인 정보 제공이 필요하다. 식당에서는 메뉴판이 이 역할을 맡는다. 메뉴판이야말로 매장 정보의 총합이며, 또한 그래야 마땅하다. 이를 위해서는 메뉴 구성, 조리방식, 가게의 운영 방식과 원칙, 화장실 비밀번호까지 모든 정보를 알기 쉽게 전달해야 한다. 여기에 점자 표기까지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메뉴판이 손님들에게만 이롭다면 이는 유니버설 디자인이 아닐 것이다. 고객에게 좋은 메뉴판은 서버에게도 좋다. 매장의 혼잡비용을 줄여주기 때문이다. 손님들은 메뉴판의 정보가 명확하지 않거나 빈약하면 서버를 호출할 수밖에 없다. 경험해 본 이들은 알겠지만 같은 말을 수십 수백 번 반복하는 행위는 그 자체로도 상당한 에너지를 요한다. 그만큼 서버의 업무 생산성은 낮아지고 피로도는 높아진다. 고객에게 체계적인 정보를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것만으로도 근무여건이 한층 쾌적해진다. 즉, 좋은 메뉴판이 모두를 살린다.


나는 그녀에게 “그렇다면 유니버설 디자인에 부합한 메뉴판이 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물었다. 그녀의 설명을 여섯 가지 항목으로 요약해 봤다.


1. 색약, 색맹, 원시, 경도 시각장애자들이 인식할 수 있도록 가독성에 신경 써야 한다. 너무 작은 문자 크기, 색약-색맹인이 인식하기 어려운 색상은 피한다.


2. 쓸데없이 영어 및 외국어를 쓰지 않아야 한다.


3. 메뉴, 메뉴설명, 가격 그리고 사진이 한 덩어리로 잘 묶여 있어야 한다.


4. 가게 소개, 주의사항을 맨 첫 장에 적는 것도 좋은 인상을 준다. 와이파이 비밀번호나 화장실 관련 정보가 있으면 그렇게 반가울 수 없다.


그녀는 마지막에 덧붙였다.


“겉멋만 부리지 않아도 중간은 간다.”


늘 그렇듯 겉멋이 모든 걸 망친다. 모두를 위해야 하는 식당에서 자기 주관대로 겉멋을 부리면 누군가는 자연히 배제될 수밖에 없다. 콘셉트에 충실하겠다고 영문 이탤릭체나 히라가나로만 메뉴판을 만들거나, 어르신들이 보기 힘들게 메뉴판 폰트 크기를 지나치게 작게 설정한 것은 손님을 존중하는 행동이 아니다. 이런 무례함은 결국 책임자와 직원들에게 부메랑처럼 돌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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