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키오스크를 설치해야 하는 이유

by 일로


Menu 14. 키오스크를 설치해야 하는 이유


장사란 기본적으로 불특정 다수를 상대하는 일이다. 하루 매출이 10만 원이라 가정해 보자. 돈가스 하나가 만 원인 시대니, 단순히 따져 봐도 하루에 열 명은 만나는 셈이다. 한 달이면 최소 300명이다. 세상은 넓고 온갖 종류의 인간 군상들을 볼 수 있다. 당연히 그중엔 속칭 ‘빌런’들도 종종 있다. 사실 방문 고객들 중 ‘빌런’이 차지하는 비율은 1000명 중 한 명도 안 된다(다행히도 우리는 술을 팔지 않는다). 그렇다고 ‘빌런’들이 남긴 인간적 상처가 작아지는 건 아니다. 특히나 이런 빌런들이 재방문 고객이 되면 고통은 더 커진다.


내가 경험한 최악의 '손놈'들은 주문으로 장난질을 하는 20대 남자 세 명이었다. 처음에 올 때 얘기랑 나중의 얘기가 다른 사람들이었는데, 다분히 의도적이었다. 입장할 때는 네 명이라 하면서 넓은 테이블을 점유해 놓고 나중엔 ‘분명 세 명이라 말했다’라고 한다거나, 주문한 메뉴를 재차 확인했는데도 아니라 부인하는 식이었다. 잘못 나온 메뉴는 폐기할 수밖에 없어 서비스로 드시라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이를 역으로 악용하는 느낌이 짙었다.


이게 의도적이라는 결론을 내린 건 단가가 더 높은 메뉴를 타깃으로 장난질을 반복적으로 해 왔기 때문이다. 꼭 메뉴 하나를 가지고 장난질을 한다. 치즈 돈가스를 주문해 놓고, 원래 등심 돈가스를 주문했다는 식으로 오주문을 주장하는 식이다. 이러면 단가가 더 높은 치즈 돈가스는 갈 길을 잃게 된다(당연히 계산은 등심 돈가스로 진행된다). 이후에는 그들에게 실수로 나온 메뉴를 서비스로 제공하지 않았는데, (그 다음엔 우동이 포함된) 세트 메뉴가 아니라 장국만 나오는 기본 메뉴를 시켰다는 식으로 장난을 쳤다. 이들은 계절이 바뀔 때마다 찾아와 이런 식으로 나를 괴롭혔다. 창밖을 기웃거리다가 내가 있는지 확인하고 들어오는 듯한 느낌이 들 때도 있었다.


한 번은 “제가 두 번 메뉴 체크를 했는데 분명 치즈 돈가스라고 하지 않으셨나요?”라고 물었다. 그중 가장 덩치가 큰 한 명이 “아니라고요! 그동안 뭐 들으신 거예요.”라고 대답했다. 이렇게 시달린 게 장장 일 년이었다. 한 번 들이받을까 하다 참았다. 내가 돌아서자 그들이 낄낄댔다. 그때 느꼈다. 이건 우리 가게가 좋아서가 아니라 그냥 나를 괴롭히는 게 즐거워서 오는 거라는 사실을.


그 때 마침 소상공인진흥공단에서 키오스크 설치 지원 사업을 한다는 소식을 접하게 됐다. 떠오르는 바가 있어 다음 날 바로 지원했다. A4용지 열 장에 가까운 매장 보고서를 작성하고, 보름 뒤 심의위원의 방문 심사를 거쳐 지원대상이 됐다. 명단 발표 바로 다음 날 뒤 키오스크 설치 업체에서 연락이 왔다. 업체는 나에게서 설치를 원하는 테이블 개수와 인터넷 공유기의 재원을 확인한 뒤 일사천리로 공사를 진행했다. 이왕 하는 거 돈을 좀 더 들여 카드결제까지 가능한 옵션으로 선택했다. 가변석 하나를 제외한 테이블 아홉 개에 키오스크를 설치했다. 직접 결제까지 완료해야만 주문서가 주방에 전달되는 방식이었다.


공교롭게도 설치 바로 다음 날 그들이 왔다. 주문 방식이 바뀌어서 결제 모두 키오스크로 해야 한다고 전했다. 얼마 뒤 주문서가 들어왔다. 등심 돈가스 두 개에 치즈 돈가스 하나. 예상대로였다. 분명 한 명은 오주문을 주장할 것이었다. 5분 뒤 완성된 치즈 돈가스를 서빙했다. 이 타이밍에 한 마디가 더 나오겠지. “저기, 저는 등심 돈가스 시켰는데요?” 그럴 줄 알았다. 바로 얘기했다.


“그거, 손님이 직접 키오스크로 주문하신 건데요?”


잠깐의 정적. 잠시 당황한 그들은 “그냥 먹을게요”라며 접시를 받아 들었다. ‘그래, 그냥 먹어야지!’ 라고 말하려다가 꾹 참았다. 뒤돌아서며 혼자 씩 웃었다. 회심의 반격! 너희들을 위해 준비했어. 마음에 드니? 그 이후로 이들은 두 번 다시 오지 않았다.


키오스크의 위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설치 후 일주일 동안 단 한 건도 오주문이 발생하지 않았다. 밀린 일을 제쳐두고 계산을 하러 카운터로 복귀하지 않아도 됐다. 무엇보다 악의적인 갑질이나 상호간의 오해가 발생할 여지가 원천 차단됐다. 키오스크는 생산성 향상만을 위한 기계가 아니다. 기계는 오해하지 않는다. 명령한 그대로를 반영한다. 사실만을 반영할 뿐인 기계 앞에서 서로가 주고받을 논쟁의 여지는 없다. 그만큼 우리는 보호받는다.


본디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상거래는 사람들의 선의와 신뢰로 굴러가며, 또한 그래야만 한다. 안타깝게도 이 신뢰와 선의에 무임승차를 하는 이들이 꼭 한 명씩 있다. 이 경우 책임자와 직원은 법적으로 온전히 보호받지 못한다. 내가 키오스크 설치를 적극 추천하는 이유다. 소비자의 부당한 요구와 분쟁으로부터 자신과 직원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키오스크는 필요한 안전장치다. 때때로 이 업계에서는 법보다 기계가 사람의 존엄을 구원한다. 안타깝지만 이게 현실이다.

keyword
이전 13화좋은 메뉴판이 모두를 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