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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람북 Aug 20. 2024

우리 집에 빛이 들어왔다

남편은 매일 나다를 만나러 갔다.

출산을 하고 본격적인 검사와 항암치료가 시작되기 전까지 주어진 시간이 대략 일주일밖에 없어서 우리는 하루가 아깝다 여기며 매일 모유를 유축하여 부지런히 병원에 전달하였다. 나의 치료일정 때문에 6주나 빨리 세상에 태어나게 해놓고 해 줄 수 있는 게 고작 이것뿐이라니. 누구도 뭐라 하지 않았지만 스스로가 나다에게 너무 미안해서 모유를 한 팩이라도 더 전달하고자 새벽에도 이불을 박차고 일어났다.




그 무렵의 나는 산후우울증의 잔재를 깨끗이 씻어내려고 발버둥 치고 있었다. 의지나 노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무기력하고 우울한 모습으로 나다를 만나고 싶진 않아서 습관적으로 감사하려고 애썼다. 이렇게 자연분만을 해서 빠르게 몸을 회복할 수 있음에 감사해. 나다가 무사히 건강하게 태어나서 감사해. 의료대란 속에서 출산도 치료일정도 밀리지 않고 진행할 수 있음에 감사해. 나다의 방을 따로 마련할 수 있고 산책로도 멋지게 구비되어 있는 좋은 곳으로 이사 올 수 있음에 감사해. 일주일이라도 모유를 줄 수 있음에 감사해. 남편의 사랑과 수고로 이렇게 집에서 산후조리 할 수 있음에 감사해.


그러나 감사함을 나열할수록 마음 어딘가엔 걱정과 두려움도 그림자처럼 따라왔다. 그런데 PET-CT 찍어봤는데 목에 있던 암이 여기저기 퍼졌으면 어떡하지? 뼈까지 전이된 상태면 어떡하지? 산후조리도 제대로 못한 몸으로 항암을 받아서 내 몸이 회복불가한 상태로 망가지면 어떡하지? 항암 부작용으로 탈모가 온 내 모습을 견디지 못하면 어떡하지? 그래서 산후우울증이 더 심해지면 어떡하지? 항암이 너무 힘들면 어떡하지? 신생아 육아와 항암을 동시에 해내지 못해서 남편이 너무 힘들어지면 어떡하지?


그럴 때면 나는 남편이 NICU에 면회 갈 때마다 찍어온 사진들을 다시 한번 돌려보았다. 한 장 한 장 넘길수록 더욱 건강하게 성장하고 있는 나다의 얼굴을 보면 '어떡하지'로 시작하는 생각들은 싹 사라졌다. 어떡하긴. 어떤 상황이 와도 안 괜찮으면 안 될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그렇게 보름이 지났다. 병원에서는 나다가 안정적으로 호흡도 잘하고 검사에도 이상이 없으니 집으로 갈 준비를 하라고 했다. 나다의 퇴원이라니. 출산을 하고도 아기 곁에서 만질 수도 안아볼 수도 없어 우리가 엄마, 아빠가 되었다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았는데 드디어 이 집에 셋이 들어올 수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기뻤다. 우리는 병원에 도착하여 퇴원 수속을 밟고 나다에게 먹여야 하는 영양제들에 대해 설명을 듣고 나다의 짐을 챙겼다. 병원에서는 나다의 자리에 붙여두었던 이름표까지 떼서 전달해 주었다. 그리고 뒤이어 겉싸개에 쌓인 작고 작은 우리 나다를 만났다.


세상에.


작은 나다를 안고 집의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데 한낮이었는데도 깜깜한 집에 불이 켜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빛은 아무리 작아도 그 자체로 빛이어서 어둠을 차근차근 밝히는 것이 아니라 어둠을 한순간에 물리친다. 나에겐 나다의 존재가 그랬다. 나다를 품에 안고 집에 들어오는 순간 이 집에서 혼자 울면서 했던 잡생각, 걱정, 두려움이 한순간에 사라지고 오직 빛과 같은 이 생명만이 집안과 마음에 가득했다.




정말이지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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