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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람북 Nov 05. 2024

외할머니 그러니까 엄마의 엄마가 돌아가셨다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용건이 있다고 해도 전화를 하기엔 다소 이른 시간이었다.


- 네, 엄마.

- 엄마가 이번 주 금요일에 못 갈 것 같아.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지금 할머니 요양원으로 가는 길이야.


엄마의 목소리가 떨려왔다. 나는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 어떡하냐며, 엄마 괜찮냐며, 장례식장 정해지면 알려달라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끊고 나니 셋 다 쓸모없는 대답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러고도 내가 무슨 말을 했어야 했는지 알 수 없어 품에서 가만히 자고 있는 나다의 머리만 계속 쓰다듬었다.






사실 나는 아직 엄마에 대한 마음이 풀리지 않은 상태였다. 도움 필요 없다고 항암이고 육아고 다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그냥 가라고 있는 대로 화를 내고, 그러고도 삼켜지지 않는 마음이 있어서 장문의 메시지를 보내고, 엄마가 다 잘못했다고 나에게도 남편에게도 사과를 했지만 어쩐지 나는 불편함이 가시질 않았다.


지금까지 살면서 딸로서 엄마가 필요한 순간이라면 셀 수 없이 많았지만 그땐 엄마가 옆에 있어주고 싶어도 있어줄 수 없었다. 아빠 때문에 혹은 이 모든 상황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가 굳이 굳이 필요한 날이면 나는 엄마를 찾아갔다. 내가 먼저 찾아가야만 만날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 출산했고, 항암도 했고 그리고 무엇보다 예전과 달리 지금은 엄마가 옆에 있어줄 수 있는 환경도 주어졌다. 이제야 비로소 엄마가 내 옆에 머물며 나를 케어할 수 있는 시간이 서른 넘은 나이에서야 맞이했는데 이 기간도 온전히 채우지 못하다니요. 나도 모르게 이 시간 동안 어렸을 때 엄마가 나와 함께 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상처들이 회복될 거라고 기대라도 한 모양인지, 이미 다 지나간 일인데도 마음은 쉬이 괜찮아지지 않았다.




그런 상태에서 외할머니의 부고 소식을 들은 것이다. 엄마는 지금 네가 항암 중이라 면역도 약한 상태고, 집에 신생아도 있으니까 장례식장엔 오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만 나는 퉁퉁 부은 얼굴 위로 맞지 않는 가발과 모자와 마스크를 욱여넣었다. 그것 말고는 달리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장례식장으로 향하며 나는 계속 할머니에 대해 생각했다. 할머니, 외할머니.


나는 친할머니 손에서 자랐기 때문에 아빠보다도, 엄마보다도 할머니와 대화하는 것이 가장 편한 사람이었지만 어쩐지 외할머니는 조금 어렵고 무서웠다. 외할머니가 딱히 나에게 무섭게 한 적이 없는데도 그랬다. 왜 그럴까. 내가 성인이 되고 나서 외할머니가 치매를 앓게 되고 그 무렵 잠깐 같은 집에서 함께 살았던 적이 있었는데도 내 마음은 동일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를 알 수 없던 외할머니와의 거리감은 장례식장에서 엄마와 이모의 얼굴을 보는 순간 저절로 깨달아졌다. 아, 엄마의 엄마라서 그렇구나. 외할머니는 엄마의 엄마, 엄마는 외할머니의 딸. 나는 내가 제일 딱하다고 생각했지만 외할머니의 눈엔 딸인 엄마가 더 그렇지 않았을까. 엄마는 엄마니까.



이모의 작은 어깨를 안으며, 또 엄마의 슬픈 얼굴을 마주 보며 나는 이모와 엄마의 엄마가 돌아가신 것에 대해 함께 슬퍼했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생각했을 땐 직관적으로 와닿지 않던 슬픔이 엄마와 이모의 엄마가 돌아가셨다고 하니 마음이 한 구석이 저릿하게 아팠다. 대체 뭘까. 엄마와 딸 사이라는 것은.






집으로 돌아오는 길, 꿈을 꿨다.

꿈속에서 할머니와 엄마와 나는 모두 서른 중반의 나이로 동갑이었다. 우리 셋은 친구였지만 분명 한 사람은 할머니, 한 사람은 엄마였다. 그곳에서 나는 엄마와 다퉜다. 나는 화를 내고 돌아섰다. 엄마도 분명할 말이 있었지만 화를 내는 내 앞에서 어쩐지 더 입을 열지 않았다. 친구 사이에도 더 좋아하는 사람이 한번 더 참는 것처럼 엄마도 그런 눈치였다. 그런 우리 옆에 할머니가 있었다. 할머니는 다투고 있는 엄마와 나를 말리는 듯했지만 정확하게는 나를 향해 그만하라는 몸짓이었다. 나는 분을 내었고, 엄마는 그런 나를 바라봤고, 할머니는 그런 엄마를 바라봤다.






잠에서 깼더니 달리는 차 뒤로 빨간 해가 넘어가고 있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알겠어요.'하고 대답했다. 마치 그 대답을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이 해는 금방 떨어졌지만 완전히 어두워지기 전까지 사이드미러에서 쉽게 눈을 뗄 순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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