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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람북 Dec 03. 2024

인생에서 다시는 없을 마지막 항암을 마치며

여러 일들이 지나가고 어느덧 마지막 항암하는 날이 되었다.


마지막 항암이라니.




두 번째 항암을 하려고 기다리던 날이었다. 첫 번째 항암을 하자마자 손 저림이 너무 심해서 핸드폰으로 [항암 손 저림]을 검색하고 있는데 옆에 계시던 젊은 여성분이 말을 걸어왔다.


- 죄송해요. 오지랖일 수 있는데 제가 뭐 하나 말씀드려도 될까요?

- 네? 어떤...

- 아 저는 오늘 마지막 항암이거든요. 손 저림에 좋은 거 몇 가지 알려드리려고요.


나는 핸드폰 검색을 멈추고 그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마지막'이라는 단어에 힘주어 말씀하시던 단단한 목소리, 왠지 모르게 반짝이는 눈동자, 그리고 짧은 단발머리의 헤어 스타일. 그 순간에도 저 머리카락은 가발일까, 만약 본인의 머리카락이라면 혹시 머리카락이 빠지지 않는 항암제였을까 하는 생각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 저도 손이 엄청 저렸었거든요. 그런데 다 해봐도 결국 이게 가장 좋더라고요.


쿠팡에서 손 마사지기와 팩 같은 것들을 직접 제품명을 검색해서 보여줘서 열심히 받아 적긴 했지만 사실 그런 건 궁금하지 않았다. 젊은 분이신 것 같은데 무슨 암에 걸리신 건지, 항암은 몇 차례 받으셨는지, 받는 동안 어떤 부작용을 겪었는지, 지금 기분은 어떤지. 마치 예전에 라디오 초대석 대본을 쓰던 것처럼 앞에 있는 사람에 대해 인터뷰라도 하고 싶었지만 그럴 순 없었다.


- 네... 알려주셔서 감사해요. 도움이 많이 되었어요.

- 오지랖이었다면 죄송합니다.


오지랖 전혀 아니라고, 알려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고 나서 덧붙여 '마지막 항암 축하드려요.'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이상하게도 나는 그 말이 선뜻 나오지 않았고, 그분은 도움을 주시면서도 본인이 오지랖이라면 죄송하다며 연신 미안함을 표시했었다.







아기를 낳고 키워보니 엄마들끼리는 말하지 않아도 깊은 유대감이 생긴다. 결혼하기 전에는 아기 있는 친구들끼리 통하는 그 끈끈한 유대감에 왠지 모르게 소외감을 느끼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했는데 임신과 출산, 육아를 겪고 나니까 이건 겪지 않고는 아무것도 공감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아기를 출산하는 것, 그리고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던 출산 이후에 겪게 되는 상황들, 잠이 부족한 내가 아기를 재우면서 겪는 말도 못 할 피로감, 양 손목과 맞바꾼 아기의 미소 한 방...  이 모든 것을 겪어보면 누군가 임신했다고 했을 때, 출산했다고 했을 때, 아기가 100일이라고 했을 때, 돌이 되었다고 했을 때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떠올리면 여전히 생생하고 애틋한 내 경험치가 기억에 짙은 농도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암을 경험한 사람들도 그렇다. 암환자, 암환우, 암경험자 또 어디서는 아만자라고도 부르는 우리들은 저마다 진단명도 항암제도 다르지만 말로 표현하지 못할 깊은 공감이 서로에게 있다. 처음 암을 진단받았을 때, 항암을 해야 한다고 했을 때, 항암 부작용을 겪을 때, 탈모가 시작돼서 삭발을 해야 할 때, 재발에 대한 두려움까지. 겪지 않고는 도저히 알 수 없는 이 과정을 어쩔 수 없이 알게 된 사람들과의 유대감은 서로를 향한 응원과 안쓰러움이 한 데 뒤엉켜있다. 그러니 이제는 안다. 마지막 항암을 받으러 왔던 그분의 마음을. 도움을 주면서도 오지랖이었다면 죄송하다며 연신 미안해했던 그 말들을. 마지막 항암을 받기 위해 항암낮병동에 앉아 여전히 발 디딜 틈 없이 북적거리는 로비를 바라보며 나는 그때의 대화를 이제야 이해했다.









마지막 항암도 역시 쉽지 않았다. 이쯤 되면 익숙해질 만도 한데 오히려 아는 만큼 더 거북했다. 주사가 잘 들어가는지 확인하기 위해 넣는 식염수 냄새가 코를 찌르면 곧이어 항암제가 들어온다는 것을 몸이 알고 있는지 시작도 안 했는데 토할 것 같은 기분이 계속되었다. 그래도 한 방울씩 떨어지는 항암제가 케모포트를 통해 꾸역꾸역 내 몸에 밀고 들어오는 것을 느끼며 예외 없이 6시간을 견뎠다. 마지막이라고 시간이 참 더디게 갔지만 마지막이라서 견딜 수 있었다. 끝이 있다는 것은 이렇게 기쁜 거구나. 항암제를 다 맞고 침대에서 일어나면서 '이제 마지막이네!' 하고 얘기했고, 다음날에 면역주사를 배에 찌르면서도 '이것도 마지막이네!' 했고, 소론도정을 10알씩 아침, 점심, 저녁으로 입에 털어 넣으면서도 '마지막이네!' 했다. 일부러 자꾸자꾸 큰소리로 말했다. 마지막이라고. 정말 인생에 다시없을 마지막이라고.


그러니 끝이 있다는 건 얼마나 기쁜 일인가.


처음 암 진단을 받았을 때 가장 친한 친구가 나에게 말했다. 끝이 있다고. 그땐 끝이 있다는 게 무슨 말인가 싶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끝이 있다는 말보다 더 완벽한 위로는 없었다. 그래서 나도 이제 막 암 판정을 받았거나 혹은 항암을 시작하는 어떤 분이 있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끝이 있어요. 마냥 어둠인 것 같지만 이 어둠엔 반드시 끝이 있어요. 긴 터널을 지나고 나면 분명 그 끝에 빛나는 일상이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그러니 견뎌주세요.




오지랖이었다면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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