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로, D-2 - 2019.0410.1200
이번이 일본으로의 세 번째 출장이다. 지난 2013년, 난생처음으로 대형 쇼핑몰 설계를 맡게 되어 롯폰기 힐즈나 미드타운 따위의 사례 답사 차 도쿄에 왔었고 2015년에는 또한 처음으로 기념관 설계를 맡아 부산에서부터 배를 타고 후쿠오카로 들어와 기타큐슈, 야마구치, 히로시마를 돌며 여러 기념관 들을 돌아봤었다.
이번 출장의 목적은 도쿄 남부의 시나가와구에 위치한 하라미술관에서 열리는 전시 참가작품을 설치하는 일이다. 모형과 영상, 벽면 패널이 설계한 대로 잘 설치되는지 감독하고 오프닝과 큐레이터 토크까지 보고 오면 나의 임무는 완수다.
오후 비행기라 아침에 캐리어를 끌고 출근했다가 회사차를 얻어 타고 공항으로 향했다. 어차피 동행 없이 가는 길이라 공항버스를 타고 가도 그만이지만 미술관까지 가져가야 하는 모형이 꽤 무거워 신세를 좀 지기로 했다.
지난 두 번의 일본 출장에서는 직장 상사를 모시는 자리였고 다른 동행도 있었다. 혼자 가는 출장길은 당연히 몸은 더 가벼워져도 마음만큼은 무거워진다. 맡은 임무를 잘 수행해도 못해도 모두 내 책임이요 혹시나 모를 사고나 위험에도 스스로 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선 현재 시점에서의 최대 임무는 두 손에 들린 나무모형을 무사히 기내로 운반하고 하네다 공항에 내려 미리 예약해둔 호텔까지 ‘모시고’ 가는 일이다. 미리 포장을 꼼꼼하게 해 둔 덕분에 파손의 위험은 없었지만 혹시나 기내 반입이 금지되는 불상사가 있을까 공항으로 가는 차 안에서 내내 불안했다.
김포공항에는 예정보다 일찍 도착했다. 무사히 탑승 수속을 마치고 일치감치 게이트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아 전자책을 꺼냈다. 지난 6년 간 회사를 다니며 왕복 두세 시간씩 걸리는 통근시간의 무료함을 책으로 달래는데 익숙해졌다. 덕분에 대학생 시절에 부족했던 독서량을 늦게나마 채우고 있다. 전자책은 신현재의 권유로 올해 초 큰 맘먹고 중고로 구입했는데 정말이지 탁월한 선택이었다. 전자책 덕분에 독서량이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탑승시간을 기다리며 인류학자 정헌목 교수의 '가치 있는 아파트 만들기'라는 책을 탐독했다. 건축하는 동료 최한솔의 추천을 받아 구입했다. 책을 읽는 내내 모형은 가지런히 내 옆에 놓여 있었다. 탑승 수속 시엔 별다른 문제가 없었지만 혹시 게이트에서 거부당할 수도 있으니 꼭 확인하라는 더 무서운 말을 들었다. 과연 모형의 운명은 어찌 될 것인가!
마침내 시간이 되어 게이트가 열렸다. 결과는 위 사진과 같이 무사 탑승. 이륙 직전, 혹시나 물건이 흔들리거나 떨어지진 않을지 승무원들이 신경 쓰는 모습은 보였지만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이번 모형처럼 위아래가 뒤집어지면 안 되는 수하물들은 손으로 들고 가야만 안전하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
다행히 제작 전부터 기내 반입 사이즈를 고려한 덕분에 기내 선반에 1cm 오차도 없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 이제 기분 좋게 짧은 비행을 즐길 차례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