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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삐딱한 나선생 Sep 21. 2020

오래 쓴 너

10년 이상 오래 쓸 물건은 제일 비싼 걸 사라.

역시 옛 어른들의 말은 틀린 게 없다.

묵혀두고만 있지 않는다면 말이다.



명품백


내 아내가 명품백을 샀다.

대충 잡아 100만원.

명품치곤 싼 거란다.


그래. 처음으로 산 명품인데.

고작 100만원 한 번 쓴 걸.

또 내 아내는 그 값을 다 빼먹을 테니까.


"난 매일 들고 다닐 거야.

고이 모셔놓을 거면 뭐하러 사."

아내는 그렇게 나에게 선언했다.


그래. 고맙다.

누군가는 친구 결혼식에 들고 가려 명품백을 산다던데.

잘 아껴놨다가 누군가에게 돋보여야 할 때, 그때 쓰려고.


내 아내는 장바구니처럼 매일 들고 다녀서.

100만원 짜리지만 천 번은 쓸 테니까.

그러니까 그 가방은 천원짜리다.



마스크


여름이라 비말 마스크를 샀다.

여러 번 쓰는 면, 나일론 마스크도 있지만.

땀이 차는데 수업까지 하려니 도저히 견디기 힘들었다.


아는 지인을 통해 개당 300원에 샀다.

땀에 절어 냄새가 나기 전까지 적어도 10번은 쓴다.

300원짜리 비말 마스크도 10일을 쓰니 하루에 30원을 쓰는 셈이다.


하지만 값이 떨어진다고 값어치를 못하는가.

반대로 생각하면 300원짜리를 10번 쓰니 이 마스크는 3천원 값을 한 것이다.

물건은 오래, 많이 쓸수록 값은 떨어지고 값어치는 올라간다.


비단 이런 마스크 하나뿐이겠는가.

내가 가진 수많은 물건들 중 그 쓰임을 충실히 하는 게 몇 있을까.

모든 관계는 뜸해지면 끊어질 텐데, 내가 사놓은 물건과의 관계도 살펴보면 어떨까.



쓸수록


예전의 글에서 난 아까워서 아낀다고 했다.

https://brunch.co.kr/@darkarkorn8cnl/452

볼펜이고 치약이고 샴푸고, 끝까지 썼을 때의 성취감이 있다.


벨트는 끊어질 때까지 쓴다 했고.

https://brunch.co.kr/@darkarkorn8cnl/473

양말은 구멍이 나야, 옷은 늘어나 헤져야 버린다.


물론 쓸수록 처음과 같진 않다.

옷은 물이 빠지고 기계는 느려지고.

낡고 늙어 버리기에 죽음이 기다리는 것 같다.


하지만 입지도 못하고 버린 새 옷 보다.

나와 함께 살을 맞대고 뽐내다 가는 저 낡은 옷이 가치가 있기에.

내 곁에 의미 없이 머물다 가는 물건은 만들지 않으려 한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써야 사랑스럽다.

물건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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