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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삐딱한 나선생 Jan 03. 2022

당신의 분노를 사랑한다

아내가 친한 언니를 초대했다.

언니는 말했다.

"너 많이 바뀐 거 같아~"

원래 뭐라고 잘 안 했는데 애들한테 화를 내더라고.

그리고 난 그 말이 나쁘게 들리지 않았다.



당신이 분노할 때


아내는 웬만해선 화를 잘 내지 않는다.

그러나 간혹 아내도 불같아지는 경우가 있다.

애가 뭘 바닥에 엎지르거나, 옷에 비벼 저지레하는 일.


정말 짜증이 날 일이다.

매트 밑에까지 다 들어서 닦아야 하고.

옷에 붙은 걸 일일이 다 떼고 뒤처리를 하고.


하지만 항상 아쉬움이 있었다.

아내는 아이의 의도보다도 자신의 피해에 민감했다.

실수로 그랬든, 악의적으로 싸우다 그랬든 피해의 양 자체에.


이제는 아내도 태도의 중요성을 안다.

한 번 실수로 엎어진 건 담아주고 닦아주면 된다.

하나 흘리게 만드는 장난이나 싸움은 반복되고 커진다.


이제 아내는 직접적 피해가 아니어도 화낼 줄 안다.

아이의 옳고 그름에 대해 화낼 줄 안다.

그것은 분노의 질적 변화이다.



분노를 쥐는 자


그럼에도 주로 화를 내는 건 나다.

고기가 타는 게 싫어 집게를 집는 것처럼.

더러운 걸 못 견디는 사람이 청소기를 잡는 것처럼.


난 감정에 예민한 편이라 내가 먼저 소리친다.

"알람 울린 지 10분 지났다. 당장 일어나라.

갈 시간 10분 남았다. 먹는 건 그만이다."


대부분은 규칙을 지키고 내 화를 느껴 멈춘다.

그런데도 끝까지 버티는 경우도 있다.

나도 화가 끝까지 올라간다.


내가 너무 거칠어지면 아내도 불안해한다.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날 나쁘게 보기도 한다.

그러면 나도 의지를 잃고, 차라리 당신이 하라 넘긴다.


아내는 안아주고 달래주기도 한다.

빵을 입에 넣어가며 재촉하기도 한다.

그래도 끝까지 나자빠지면 답이 없다.


아내도 아이와 울고 불고 끝까지 가본다.

등짝도 때리고 소리도 지르고 이성을 잃는다.

출근시간은 촉박하고 오은영 박사님은 집에 없다.



분노의 가치


난 화를 내고 싶은 사람이 아니다.

내 소중한 아이를.. 매일 안고 뽀뽀하기도 시간이 부족하다.

하지만 이 세상은 전쟁 없이 평화만 가득한 천국이 아니니까.


아무리 사랑하는 내 아이라도 힘들게 할 때가 있어서.

오늘은 너무 피곤해서, 친한 친구랑 다퉈서, 아니면 너무 친해서 놀러 가겠다고.

떼를 쓰고 뒤집어지는 널 어떻게 말릴 수 있겠니.


돌이켜보면 아이를 키워온 시간이 그냥 흐르진 않았다.

이러다 애 잡는 거 아닌가 할 정도로 집어던진 적도.(침대에)

내가 성격 파탄이 아닌가, 내가 나쁜 부모인가 괴로웠던 사람이 나뿐일까.


너무 예쁘고 사랑스럽고 애교 부리는 때도 있지만.

가끔은 말도 안 되는 일로 나에게 투정 부리고 힘들게 하는데.

나빠지고 싶지 않아도, 누군가는 그 한계를 막아주고 감정 소모를 해야 하니까.


아이를 키우는 일은 잘 손질된 생닭은 사는 일도, 치킨 배달을 시키는 것도 아니라서.

온전히 내 손으로 닭 모가지를 비틀고 내장을 도려내 그 살점을 남기는 일.

처음부터 완전한 모습이 아니라, 그 모습이 되어가는 전체의 과정.


스테이크를 썰면서 동물 복지를 논하는 가식이 아니라.

난 화내기 싫다면서 예쁜 아이 모습만 취하려는 이기심이 아니라.

진심으로 아이에게 반응하고, 웃어주고, 화내고 무너지는 당신이 아름다워서.


우리의 분노가 서로를 향하는 폭력이 되지 않도록.

서로에 기대 조금씩 성장하는 우리가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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