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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샤 Apr 05. 2024

상실에 관하여

나의 두 번째 심리 상담 일지 (6)

나는 어릴 적 내가 어리다는 사실이 싫었다.

얼른 완벽해지고 싶었다.

완벽하지 않은 것은 엄마에게 혼나니까.


다년간의 종교 생활로 얻은 것이 있다면, 

깨달음은 백 번의 고찰이 쌓이고 쌓여

어느 날 우연보다 더 거짓말 같은 우연으로 톡 하고 벽을 깨뜨린다는 것이다.


여전히 어린아이들의 서툰 말과 행동을 보면 수치심이 느껴진다.

불편함의 정체가 다름 아닌 애정의 결핍이었던 것이다.

완벽하지 않으면 혼나니까,

실수를 하면 맞으니까,

완벽한 친구를 보면 엄마처럼 따랐다.

나에게 애정을 보내주지 않는 엄마에게 그랬듯 집착했다.


오은영 박사의 금쪽같은 내 새끼라는 방송이 막 시작했을 때는

매 회를 보면서 울었다.

그땐 조금 다른 이유로 울었다.

망가진 아이보다 서툰 손이라도 내밀었던 부모에게 구질구질한 눈물이 났다.

 

조금 더 시간이 흐른 뒤 방송을 외면하게 되었다.

방송에도, 현실에도 지쳤다.

그러다 우연히 익숙한 장면을 보게 되었다. 안전한 남편으로부터 아이를 지키려는 엄마를.

수치심에 보지 못하고 넘겼다. 화면 속 엉망인 아이가 너무 나 같았다.


오 박사가 분노했다. 아이를 아버지로부터 떼어놓는 가정 폭력이자 아동 학대라고 했다.

그 장면을 보는데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났다. 무언가 톡 하고 깨졌다.


고등학생쯤이었을까, 엄마가 쓴 육아일기를 본 적이 있었다.

내가 막 태어났을 때 엄마가 병원에서 쓴 거였다.

아빠가 너무 싫다는 내용이었다. 잘 웃지 않는 내가 아빠를 닮은 것 같아서 힘들다고 했다.

자라면서 수백 번도 들은 이야기였다.

아빠는 더럽고 피해야 한다는 말.

그게 엄마에게 맞은 매보다 더 나를 망가뜨린 폭력이라는 사실은 미처 몰랐다.


상실에 애도하면서 엉엉 울었다.

아빠와 어린 나의 관계에 대한 상실.

그리고 백 번 고민하지 않았다면 영원히 오해로 남았을 불편함에 대한 미지의 상실.

이 상실은 새 싹을 틔울 밑거름이 될 테다.


어제 집을 보러 다녔다.

수술대에 오르고 엄마의 원망을 듣고 있었던 두 달 전에는

마침내 오늘을 맞은 나를 상상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더 괜찮다.


약속이 없는 평일에

제일 좋아하는 음료를 마시면서

제일 좋아하는 밴드 음악을 들으며

카페에 앉아 글을 쓴다.


나는 꽤 단단해졌다.

그리고 어질러진 나를 사랑하기 시작했다.

미워할 이유가 없으니까.

그걸 미워한 건 엄마이지 내가 아니라는 상담 선생님의 말을 믿어보기로 했다.


아무 문제도 없을 거다.

나는 원래 그랬으니까.

내가 그렇게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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