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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s Meer Jun 19. 2024

표류 3





눈을 뜨자마자 내가 있었다.

당황하여 눈동자를 굴려보니

그곳에 또 내가 있었다.

완전히 몸을 돌려 뒤를 보니

역시나 내가 있었다.


괜찮으세요…?

처음 보는 얼굴인데, 뉘신지…


거울로 된 사람들이 나를 둘러싸고 걱정했다.


아아… 괜찮습니다. 여기는 혹시 어딘가요?


나는 그들의 얼굴을 쳐다보며 물었다.

순간 그들의 얼굴이 더럽고 잔뜩 일그러진 내 얼굴로

가득 차 있었다.

얼른 표정을 고치고 면상을 쓱쓱 문질렀다.


여기는 거울 나라.

이곳 사람들은 친절하고 예의 바르다.

하루 종일 자기 자신을 마주하며 살다 보니

겉모습부터 행동, 태도까지 흐트러짐이 없다.


여기서도 오래 머무를 수 없었다.

말을 걸려고 눈을 맞추면 덩달아 마주 보는 나.

바보 같은 얼굴, 정리되지 않는 잔머리, 띨띨한 체형, 당황해서 부들거리는 목소리…

꼴 보기 싫은 아이 하나, 아니 여럿이 나를 들여다본다.


아, 안녕히 계세요…를 우물거리며

나는 도망갔다.


거울 나라 사람들은 잠깐 의아해하고는 다시

거울을 들여다보며 몸을 윤기 나게 빡빡 닦을 것이다.

그리고 서로를 향해 이쁜 눈웃음을 지어주겠지.

물론 한쪽 눈을 가늘게 떠서 상대방에 비친 자기 얼굴을

확인하고 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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