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에 대한 강력한 저항
나는 잘 웃고 평화로워 보이는 사람이다.
겉보기에 그런 외관을 지녔다.
실제로 화목한 가정 속에서 자랐고,
종종 다투기는 해도 언니랑 동생도 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내가 굉장히 바른 청년의 정석 같이
보는 사람들도 있다.
전에 썼던 글처럼 평화롭고 행복해 보이는 사람 말이다.
그렇지만 나의 내면은
혼돈으로 가득하다.
평화로우면 좋겠는데 그다지 평화롭지 못하다.
가끔 나는
내가 생각하기에 내가 고슴도치 같을 때가 있다.
어렸을 때 초등학교 고학년 무렵에
고슴도치를 키워본 적이 있다.
고슴도치는 아주 예민한 생명체이다.
약간이라도 불편함을 감지하면 몸을 둥글게 말고
날카로운 가시들을 세운다.
스스로를 보호하는 본능적인 행동이다.
그렇지만 안정감을 느끼는 상황에는 날카로운 가시를 눕힌다.
그래서 고슴도치를 쓰다듬을 때
고슴도치에게 내가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가시는 날카로운 바늘이 될 수도 부드러운 털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평소에는 감각을 차단시키며 살아간다.
어느 것도 느끼지 않으려 한다.
잘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애써 알아내려고 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모르려고 하는 편이다.
굳이 알고 싶지 않다.
알게 되고 싶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오면서 미묘하고 불편하게 느껴지는 부분들이 있었다.
이를테면
나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모순적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보통 새로운 사람들과 대화할 일은 잘 없다.
예전에는 새로운 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해 노력을 하거나
기존에 있는 인간관계들을 잘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란 걸 했었다.
어느 순간부터 부질없음을 깨닫고
인간관계를 노력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쉽게 걱정을 해 준다.
쉽게 위로를 하고 타인을 생각해 준다.
그렇지만 그게 정말 타인을 위한 것일까?
일종의 위장술 같다고 생각했다.
우리의 관계를 위한 일종의 가면극 같다고 생각했다.
어떤 날은 좋은 말도 위로도
작위적으로 느껴질 때가 있었다.
그렇다면 순수하게 누군가의 걱정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에게 문제가 있는 것일까?
많은 시간 많은 생각을 했었다.
정말 좋은 사람 같아 보이는 사람도
뒤에서는 나에 대해 어떻게 말을 하고 다닐지
나는 알 수 없고,
나와 너무 결이 다른 사람은
가까워지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누군가를 온전하게 신뢰한다는 게 가능한 일인가?
이익을 추구하지 않고
그저 그 사람이 좋아서 사랑한다는 게
현실에도 존재하는 일인가?
이런 의문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심지어 내가 좋다고 하는 사람조차도
약간이라도 틀어져버리면
적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는 게
이상한 모순이다.
어떤 날은 누군가가 나에 대해 걱정하며 묻는다.
묻는다고 정말 말해버리면
나는 그저 씹어먹기 좋은 가십거리들만 제공해 주는 건 아닐까?
정말 나를 위한다고 묻는다는 게
사실은 나를 위하는 게 아니라
본인의 위안을 삼고자 하는 게 아닐까?
이렇게 찰나의 순간에도 생각이 많아져 버리면
절대 사람들 속에서
부드럽게 어울릴 수가 없다.
그래서 내가 좀처럼 사람들 속에
잘 섞이지 못하는 사람인 이유인 것 같다.
사람들 속에 있는 순간부터
원하지 않는 고도의 심리전과 신경전이 펼쳐진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나는 이미 그런 것들이 피로하다고 느꼈던 것일까.
굳이 말하지 않지만
미묘하고 불편하다고 느끼는 것들
우리는 모두 침묵한다.
침묵을 지키는 이유는
타인에 대한 강력한 저항이다.
침묵은 강한 힘을 지녔다.
말을 하지 않으면 상대는 나에게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나를 위해줄 수도 없겠지만
나를 공격할 수도 없다.
그래서 나는 고슴도치가 가시 세우듯이
침묵을 지키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