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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아! 제발 이러지 마요. +13

팬티 한 장 고민 없이..

매주 아내의 '한마디'말들을 정리하다 보면 '반성과 감사'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런 상황들을 적고 있는 제 자신이 너무도 부끄러워서 매번 약속한 화요일이 될 때마다 주저하길 반복하다가 발행버튼을 누르기도 합니다.


'어~ 이렇게도 무심했던가? 너무 모르는 거 아닌가?'등등의 말들을 혼자 주절거리면서 공개하기를 주저하는 것입니다. 종종 부부를 함께 만나다 보면 두 사람 중에 반드시 한 사람은 에너지 넘치게 요구하고 주장하고 밀어붙이는 사람이 있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 가정에는 제가 그런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부여받지도 않은 역할을 하면서 늘 신속한 결정을 하는 것같은 모양새라서 자녀 세명과 사는 부부로써 다복해보인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신중하려고 시간을 끌기도 하고, 신속한 것같지만 엉터리 결정을 하고 밀어붙여서 재정주머니는 바닥이고 아내의 속마음은 여전히 멍투성이입니다. 그런 삶이 잘못되었다며 반성하고 부단한 노력을 하지만 이미 쌓아놓은 빚과 마음의 상처가 커서 화복이 쉽지 않습니다.  재정과 관련된 대화를 하다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던 순간에 대해 나누어 보려고 합니다.






학년이 높아지는 아이들에 대해 대화 나누다가


다른 아이들처럼 선행학습이나 취미활동을 위한 학원을 보낼 여력이 되지 않습니다. 그런 상황 때문에 고민하던 아내가 저렴한 복습용 문제집 몇 권을 세 아이 위해 구매하려고 한다고 합니다.

"남편, 애들 문제집 몇 권만 사려는데도 세명이다 보니 십만 원이 넘네요.. 휴....."

"........................"

금액이 상당히 부담스러운 수준이어서 아내는 구매를 망설이고 저는 할 말을 잃었습니다.


남편 혼자 빚 갚느라 속도도 느리고 혼자만 힘들다며 맞벌이에 나섰습니다. 그랬을때,  

"여보, 이제 선생님이니까 번듯하게 옷 좀 사 입으면 어때요?"

"남편, 그냥 입던 옷 입고 다닐게요."

"좀 사 입어요. 여보"

"남편, 애들 용돈 줄 현금도 없어요."

"......................."

온라인으로 매월 입금된 근로급여는 온라인상으로 1~2일내로 모두 출금되다보니 아이들 용돈 줄 현금조차도 없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처가살이하다가 우리끼리만 사는 집으로 이사를 하고 나서는 가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편입니다. 빨래를 몇 번 접어보면서 느낀 대로 아내를 생각하는 남편의 마음으로 말하던 날이었습니다.   


"여보, 속옷들이 많이 낡았어요. 죄다 버리고 좋은 것으로 장만해요."

"몰라서 안 하는 거 아니에요. 버티느라 그런 거지요."


"내가 한때 속옷업계 일했잖아요. 요즘에 좋은 게 엄청 많아졌더라고요. 당신만이라도 좋은 거 사서 입어요. 그럴 자격 있어요."


저는 누구나 아는 속옷 브랜드에서 일해봤다는 자부심이 조금 남아 있습니다. 신입시절 일 잘하다가 엉뚱한 생각으로 스스로 뛰쳐나와서 할 말이 없긴 합니다. 그런 업무 경험을 바탕으로  아내를 배려한답시고 낡은 속옷에 대해서 '과감하게' 제안을 한 것입니다.


"팬티 한 장 고민 없이 사는 날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 아.. 무.. 말.. 도.. 하.. 지.. 못.. 했.. 습.. 니.. 다."

듣자마자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냥 가만히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점점 커갈수록 아이들 관련 비용지출이 늘어나면서 부부를 위한 지출은 줄어들어야 하는 상황입니다. 지출순위가 남편,아이들,마지막으로 아내 자신이었던 것입니다. 그런 것을 전혀 모르다가 마지막 아내의 '한마디'에 '딱'하고 맞은듯 직면하고 말았습니다. 이제서야...


"팬티 한 장 고민 없이......"



속옷업계일하면서 미래의 아내 것으로 선배와 업체에서 챙겨준 것, 직원가로 사놓은 속옷들이 몇 박스나 있었습니다. 결혼과 동시에 세 번의 출산을 겪으면서 아내의 체형이 완전히 변했습니다. 나름대로 관련업계 일했다고 아내 속옷만큼은 충분히 준비해 놓았다고 자부했지만 모두 무용지물이 되었습니다. 사이즈가 맞지 않고, 모유수유와 회복되지 못한 몸 탓에 제때 입어보지 못했습니다. 시간이 지나 '황변'도 생겼고요. 한껏 챙겨놓은 것들이 이제 보니 무난한 언더웨어가 아니었습니다. 제가 '란제리 사업부'만 일한 탓에 '우아한 란제리 세트'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을 견디면서 외벌이 하느라 고생한다고 남편이 필요한 것들은 거의 대부분 사줬던 아내는 자신을 위한 것들은 대부분 포기하고 지냈던 것입니다. 아내의 그런 헌신과 노력에 대해 모르고 지냈습니다. 혹여 나중을 위해 자신만의 비상금을 만들거나 남편 몰래 처가에 돈을 보내거나 남편 모르게 카드를 사용하는 등의 행동을 하지 않는 아내의 눈물겨운 사랑을 모르고 지낸 것입니다.



그런 시간을 견뎌내면서 지금까지 지내고 있는 동안 아내는 자신의 것들이 낡아도 일단은 버텨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가사활동에 '이제 조금' 참여하면서 '이제야' 알게 된 것입니다. 아는데 모른척하는 것이 아니라 모르기 때문에 모르는 대로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내의 한마디에 정말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다른 곳을 보면서 숨을 돌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요?


상황이 변한 것은 없습니다. 여전히 꼭 필요한 생필품만 저렴한 것을 구매하고 생활하면서 빚을 갚고 있습니다. 지금에서야 아내에게 감사하고 미안한 마음을 조금씩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모든 구매에 있어서 우선순위가 '아내'가 되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뭐든지 아내를 위해서 맘껏 구매가능한 생활수준은 아닙니다.



제게 필요한 생필품들은 거의 '다이소'에서 사려고 합니다. 아내에게 뒤늦게 깨달은 마음에서 미안함이 들기 때문입니다. '다이소'에서 조금이라도 저렴하게 구매하려고 합니다. 아내의 헌신적인 사랑에 보답하는 것은 '패션' '유행'보다는 '실용성'만을 생각한 적정 구매를 지향하는 것입니다. 바깥에서 외벌이 하며 고생하는 남편이라고 뭐든지 최우선으로 챙겨준 아내에게 제가 할 수 있는 최우선의 행동변화라고 생각하고요.    



그렇다면 아내는 어떨까요? 그런 생각으로 전격적으로 구매패턴을 바꾼 남편을 보면서 마음이 힘들어합니다. 더 열심히 벌어서 필요한 생필품을 '고민하지 않고' 살 수 있게 해달라고 합니다. 자꾸 궁상맞게 저렴한 것만을 산다고 하고, 안 산다고 하면서 때로는 아내가 자신 것만 사게 되는 것에 죄책감 느끼게 한다고 합니다. 계속 이렇게 살 수는 없다면서 아내는 맞벌이 생활에 나섰습니다. 오랜만에 본격적인 직장생활에 몸과 마음은 실신직전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팬티 한 장 고민 없이.."를 쓰면서 느낀 소감은


처참한 심경입니다.

아내가 그런 말을 하기 전에도 그와 비슷한 말을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결혼을 하고 너무 많은 일이 팡팡 터지다 보니 살면서 여자로서 필요한 생필품들을 제때 못 사고 전전긍긍하면서 지낸 때가 엄청 많았다고 했습니다."  그런 말에도 저는 그 현실을 제대로 느끼지 못했던 것입니다. 몇 년이 지나서 창피함을 무릅쓰고 있는 그대로 "굳이 그런 말을 해야" 현실을 알아차리는 남편과 사는 고통을 참다못해 토로한 것입니다. 이제야 현실을 직시하게 된 것입니다.  이제야.....

그래서 처참한 심경입니다.

 

 


후회가 동반됩니다.

어쩜 그렇게도 아내 마음을 모르고 엉뚱한 노력을 하고 살았을까?라는 한숨 섞인 후회를 계속하면서 글을 적고 있습니다. 연재 글을 쓸 때마다 아내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매번 풍선처럼 커집니다. 발행버튼을 누를 때쯤에는 감당 못할 크기의 풍선이 된 '미안함'을 덧붙여서 내보내는 느낌입니다. 그 '미안함'이 글이 발행되고 나면 '창피함'이 되어 몸 둘 바를 모른 채 하루하루 보냅니다. 혹시라도 저와 같은 상황을 겪는 남편분들이 빨리 터닝포인트를 찾는 계기가 되었으면 해서 저의 창피함을 공개합니다.  



강의도 신청했습니다.

어디선가 봤는데 상대방의 마음을 모르는 사람은 사실 자기 자신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 자신을 제대로 들여다보고 상대방과 올바른 대화를 하기 위한 강의도 신청해서 듣기 시작했습니다. 건강한 가정으로 회복되기 위한 노력을 계속 이어갈 예정입니다.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풍선처럼 부풀 때로 부푼 미안함과 후회의 마음을 덧붙여 발행하고 나서 '창피함'을 잠재우면서 다음 화요일 " 남편! 내가 아니라면 아닌 거예요."편을 발행준비하겠습니다. 항상 읽어주시거나 '격려와 응원'을 해주시는 분들 덕분에 저는 노력을 이어가게 됩니다. 그러면서 아내의 멍든 마음이 조금씩 풀려가는 기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런 작은 관심과 공감에 크게 감사하게 됩니다.  



끝까지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미리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바람 없이 연 날리는 남자 Dd


출처:사진: Unsplash의 Dim H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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